불과 몇년 전 명품과 럭셔리라는 말이 대두되고 보편화되어 난무했을 무렵, 그래서 럭셔리라는 말이 그 진정한 의미를 잃고 방황했을 때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럭셔리 호텔들을 출장 다니고 있었다.
그 때 나의 보스가 나에게 물었다.
'진정한 럭셔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차마 대 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재미없는 용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캄보디아 씨엠립에 출장갈 일이 있었다. 내가 캄보디아를 여행하기 전 그 곳의 이미지는 선진국의 신식민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무분별하게 개발된 가난한 국가, 더 이상 가치없는 퇴색된 관광지였다.
그 곳에서 A라는 가장 비싼, 가장 유명한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다.
첫 번째 놀란 것은, 앙코르 왓이 세워졌던 크메르 제국의 위용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
두 번째 놀란 것은, 그 럭셔리한 A라는 호텔은 캄보디아가 대중화된 관광지로 변해가기 전, 원래의 모습을 지켜내고 있었다는 것.
세 번째 놀란 것은, 대문 하나 차이일 뿐인데도 A와 그 외부 세계의 극심한 차이에 대한 괴리감이었다.
A에서 제공하는 투어의 일환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수상가옥들을 가장 좋은 보트를 타고 방문했다.
더러운 흙탕물에서 헤엄치며 웃는 아이들, 코카콜라 광고로 뒤 덮인 침몰할 듯한 작은 배를 탄 채 물건을 파는 사람들보다,
럭셔리한 보트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며 그들을 바라보는 내가 더 행복했을까?
글쎄다. 만약 내가 A를 자비를 내고 갈만한 재력이 있고,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가진 것의 일부이지만 그들에겐 큰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나눠줄 수 있다면, 그들을 위해 새 보트나 살 집을 마련해 주어도 내 재산에 조금도 손실이 가지 않을 정도라면 그들과 나 동등하게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로 그 곳을 방문했으며, 무료로 A에 투숙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곳의 모든 것들이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동등하게 행복하거나 내가 A에 자비로 투숙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과거에는 그런 척 내것인 척 했을지 몰라도 지금 나의 여행의 온도가 변했으니까.
이제는 내가 가진 것 중 일부를 그들을 위해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나와 그들 모두가 동등하게 만족할 만큼, 그렇게 의미있는 소비를 할 수 있는 여행을...나는 꿈꾼다.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공정여행(fair travel)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