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10주기를 그리며
2014년 10월 27일. 그날도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을 자다 깼다. 우연히 버스 안 텔레비전 화면을 보게 되었다. 자막에 속보가 떴다.
“가수 신해철 사망”
내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텔레비전을 확인했다. 다른 채널에서도 가수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똑같이 접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아저씨도 깜짝 놀란 표정이다. 서로를 보다가 갑자기 내 눈 밑으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옆에 앉아 있던 그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린 마왕의 팬이었다.
터미널에서 내렸다. 대체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통 신해철 부고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린다. 그들의 표정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사랑했던 위대한 가수가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격이었다. 빈소가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졌다고 소식을 접했다.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입구부터 엄청난 사람이 모였다. 일반인은 접근이 되지 않았다. 그와 친했던 연예인 동료들이 빈소로 들어가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모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신해철이란 사람의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것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사인은 “의료사고”였다. 분명히 지병에 걸린 적도 없고, 며칠 전까지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 MC로 참가했다. 새로운 음악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던 중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다니! 너무나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사실 신해철이란 가수를 잘 알지 못했다. 마왕을 직접적으로 알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친구가 가져온 앨범 때문이다. 바로 넥스트의 앨범이다. 야간 자율학습과 성적 문제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날아라 병아리”를 들었을 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후 그의 광 팬이 되었다. 그가 냈던 모든 앨범을 찾아 들었다. 참으로 느낌이 다 다르지만, 들을 때마다 힘이 되는 곡이 많았다. 그의 노래는 일반 사랑보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느낌의 가사가 많았다. 지금 들어도 세련된 곡이 너무 많다. 특히 더 대단한 것은 지금까지 그의 노래는 표절 시비가 한번 도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더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사회적인 부조리와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라면 응당 자신에게 피해가 가면 몸을 움츠리기 마련인데, 그는 반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약자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강자에게 더 강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방송한 신해철 10주기 프로그램을 봤다. 하나같이 좋은 형이자 동생, 동료, 사람이었다고 칭송한다. 참 많은 연예인이 아직도 그를 그리워한다. 그 모습에 같이 울컥해졌다. 그가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마왕과 나는 10살 차이다. 올해 나는 마왕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생각하면 마흔 후반이란 너무 이른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뭐가 그리 급해서 하늘은 이런 대단한 사람을 오래 놓아두지 않고 데려갔는지 가끔 원망스럽다.
“나를 쓰는 편지”와 “그대에게”를 시작으로 “민물장어의 꿈”을 거쳐 “Here, I stand for you”를 마지막으로 듣고 있다. 언급한 노래 말고도 정말 수많은 그의 명곡을 천천히 들어보려고 한다.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 세상의 불의에 당당하게 맞선 논객, 약자에게 먼저 더 다가가 위로하던 따뜻한 사람. 내가 쓴 세 번째 책이자 첫 에세이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에도 소개했던 마왕 신해철. 그가 떠나간 빈자리가 유독 커 보인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인생의 고비를 넘겼던 내가 이젠 그의 곁에서 멀리나마 같이 서 있으려고 한다. 마왕님! 보고 싶습니다. 저 하늘에서는 편안하게 더 멋진 음악 만들어 신나게 즐기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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