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거리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독특한... 아니면 못된 성질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거리 두기'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리를 둔다'는 말은 관계에 있어서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컸습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가 당사자라... ㅎ)
그런데 여러 작품들을 보니 이게 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네요. 어제 우연히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이란 노래를 듣는데... 제게 이런 일이 생기면, 별로 좋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아재 개그입니다. ㅎㅎ) 잠깐 동안 이미지 작업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는데... 역시나 시간이 지나니 그냥 무감각해집니다. 역시 중요한 건 내용 아니겠습니까? ^^;;
강원국 작가님은 일 때문에 두 번 잠깐 만난 적이 있는데요, 세련되게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연 들으면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그 부분도 애매합니다. 잘 들으면 웃긴 얘기가 아닌데,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첫 장만 잘 읽고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간단 요약하면 '용기를 내어 직접 쓰라'는 것인데, 저는 그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저는 아예 아무도 (내 글이나 기타 등등) 보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원칙은 쉬운데... 뒷부분이 살짝 마음에 걸립니다.
개인적으로 영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저기서 1인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이 많은데 대부분 '수익'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적인 내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건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강원국 작가님의 글쓰기론을 기반으로 하여 영상 창작에 입문하는 내용을 생각 중인데, 지금은 우선순위가 밀렸습니다. 나중에 그때에도 아직 아무도 하고 있지 않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려고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첫 번째는 바로 책 제목이죠. 원작은 (직역하면) '커다란 노트', '증거', '세 번째 거짓말'로 이루어진 세 개의 작품인데, 보통 아고타 크리스토프 3부작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거짓말 3부작이라고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번역본에 붙여진 해설에 고육지책이었다고 수줍게 고백하긴 했지만... 너무 의욕이 과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작품을 읽으면 그런 열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리고 각 작품의 제목도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 동안의 고독'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초점이 어긋나 있는 것 아닌가... 번역 제목이 나쁜 것은 아닌데, 과하다는 것이죠. 멋을 부리기보다는 가능하면 최대한 짧고 담백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문제는 '존재'라는 단어겠죠. 당연히 작품 안에서 '존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는 너무 무겁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이야기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전쟁이라는 배경 때문에 보다 원초적으로 '생존'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삼부작의 두 번째, '증거'의 앞부분에 나온 말입니다. 대화처럼 처리되었지만, 주인공의 독백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3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맘에 든 것은 어떤 거창한 수식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단어들로 담백하고 얘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삶을 그저 받아들이는 듯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1부의 노트에 기록된 이야기들이고, 오래 그리고 평생 동안 걸릴 일이라는 얘기가 3부에 담겨 있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세 번째 구입했는데, 여건이 된다면 다양한 판본을 다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이전에 포스팅을 한 바 있습니다. 헨리 다거의 그림을 연상시킨다는 내용들이었는데요...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 부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거의 글로 쓰는 그림에 가까운... 그래서 이전에는 내용보다는 이미지와 감각에 집중했는데, 다시 읽으면서는 그 이면으로 들어가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말로만 노력이지 뭐... 그냥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이 문장인데요... [채식주의자] 세 줄 요약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채식주의자]도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연작 형태의 작품입니다. 이 문장을 발견하고 읽으니 그나마 보이기 시작하네요.
이 역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처럼 주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면 '안다'는 것이 관계 맺음의 출발이지만 사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안다'라고 얘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게 되는데, 이는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나의 기준'을 공고히 세우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네, 그저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내버려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채식주의자]에서도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에이미와 이저벨]에서 결정적인 문장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거리가 멀어짐으로써 따듯한 마음이 생긴다'는 이 깨달음은 제가 앞서 이야기한 바로 그것이죠.
결론은 어렵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한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