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은 텅장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 결혼해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이 없네?
결혼하고 싶은 텅장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회사 생활 연차는 쌓여가는데
통장이 ' 텅장 '이 되도록 펑펑 썼던 나란 여자!
모아 놓은 돈은 0원이요,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
엎친 데 덮친 격(?) 다신 안 올
운명 같은 남자를 만났으니,
' 어어 나 이러다 곧 결혼할 것 같은데.. '
그런데, 어쩌나?
결혼자금이 없다!!!
그래, 1년 동안 어떻게든 마련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이 결혼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나는 그렇게 미리 결혼 준비의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ㅎㅎ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
' 뉘 집 딸인지 0원을 모아 시집간다네요? '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목표를 세웠다.
' 그래, 1년 동안 1,000만 원은 모으고
( 부모님께 보태달라고 하자... )'
다행히도 노처녀 딸 시집가는 게 소원이라고 하셔서...
대기업 다니는 미혼인 여자가 1,000만 원
마음만 먹으면 모은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난 참말이지 돌은 i 였다.
정말 잘 안되더라.. 품위 유지 비용부터
취미 수집가라는 명목 하에 정말 1천만 원 모으기는
도전과제라고 불릴만했다.
직장인 투잡, 부업의 시대
가족 식사 자리에서 친오빠가 친한 친구 부부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해줬다.
" OO네, 쉐어하우스로 부업하는데 잘 돼서 6개월 만에 7호점까지 냈다더라. "
월급 저축으로 돈 모으기는 포기했고 그렇다면
투잡을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찰나에 솔깃한 정보였다.
한번 쉐어하우스에 대해 검색했을 뿐인데,
똑똑이 SNS 로직!! 광고들이 나를 계속 인도했다.
' 집이 없어도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방법! '
' 직장인 쉬운 창업 쉐어하우스 VS 에어비앤비 '
쉐어하우스 준비 과정
2018년도라 코로나 영향은 없었고
오프라인 모임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퇴근 후 오프라인 모임을 참여하였고
쉐어하우스 창업에 대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지금은 코로나 변수가 있기 때문에 추천하는 투잡은 아니다. )
정확히 두 달 후, 내가 만든 브랜드로 쉐어하우스를 오픈했고 그렇게 난 N잡러가 되었다.
( 요가강사 자격증을 취득 한 이후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도 저축을 못하고 있었으니
난 망나니... 아, 아니야 ㅎㅎ)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간절한 동기가 있지 않는가? 결혼이라능..
지역 선정을 위해 사전조사를 했고,
부동산 매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주말마다 직접 부동산 투어를 했다.
쉐어하우스라는 특성상,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을 설득하는 것부터
첫 번째 난관이 있었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내가 계획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PPT를 미리 만들어 보여주고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쓰고 빌었다..
아주 처절하게... ㅎㅎ
몇 번의 거절 끝에, 나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
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학생들~~ 저 결혼자금 모으려고 시작한
쉐어하우스에요, 어서 오세요? " 하면 누가 올까...
그리고 나는 사실 사업가에 대한 작은 꿈을 품고 있었다.
이왕 시작하는 거 브랜딩의 브- 자도 모르는 이과. 공대생이지만 제대로 마케팅을 해보고 싶었다.
브랜드명을 손수 붙여주고,
그에 어울리는 로고와 B.I (Brand Identity)를 만들었다.
홍보를 위해 이때부터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오픈 준비에 대한 과정을 블로그에 적어 나가는데 한 학생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 사장님의 쉐어하우스에 대한 마인드가 너무 좋은데 꼭 딸을 보내고 싶다고.. '
그 진심이 와 닿아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오픈 준비를 하기위해 퇴근 후 시간을 갈아 넣었다.
어느 정도였냐... 몸이 아파서 열이 펄펄 나는데도, 퇴근 후 달려가서 매일같이 준비했고..
겁이 극단적으로 많은 나인데도,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이불 하나 들고 가서 주말에 자고 왔다.
학생들이 머물기에 어떤지,
여학생들이 대상이었기에 주변이 무섭지 않은지
몸소 체험해야 마음이 편했다.
( 지금 생각하니 눈물 좀 맺히네 ㅎㅎ )
그래도 배우고 일해온 게 건축이지 않는가?
예쁜 집에서 살고 싶은 학생들의 로망을 재능기부를 해서라도 실현시켜 주고 싶었다.
" 멋진 라이프를 빛내주기 위한 공간 "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준비했는데
정말이지 대충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피곤한 성격으로 또 한 번의 영혼을 다 바쳤다.
실수 없는 가구 구입과 배치를 위해 실측을 꼼꼼히 했고 아날로그 작업으로 공간 배치를 해봤다.
마지막에는 3D 플로어 플랜으로 최종 점검을 했다.
( 이는 훗날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그렇게 완성한 나의 첫 번째, 쉐어하우스의 온라인 집들이를 살짝쿵 보여줘야겠다.
대기를 이어가던 만실 쉐어하우스, 나에게 안겨 준 것
그래서 그 여자는..
1년 후,
과연 1천만 원을
모으게 되었을까?
쉐어하우스 예상 수익을 보수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부수입을 만들어 월세를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돈 개념이 없었던
내가 드디어!
월급을 저축하기 시작했다.
저축의 개념까지 더해지니 나는 1년이 아니라 8개월 만에 1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곧 죽어도 저축만큼은 못하겠다던 사람이 왜 변하게 되었을까?
내가 직접 사업을 하고
운영을 해보니깐,
단 돈 천 원도 소중하더라.
너무너무...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어렵기도 했지만, 사실 매 순간 감동이었다.
취준생으로 들어왔던 친구들이 취업이 잘돼서
연락 왔을 때는 정말 뿌듯하고 괜히 내가 다 자랑스러웠다.
쉐어하우스 운영할 때는 결혼 전이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았고, 쉐어하우스 메이트들 간의 어울리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주었다.
내가 대학생 때, 먼저 취업한 언니들이 분위기 좋은데 데려가 주면
' 아,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잘 돼서 놀러 다녀야겠다 ㅎㅎ '
이런 생각으로 힘이 났던 것 같아서 그런 자리도 마련해주고 선배 또는 언니로서 그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아꼈다.
그런데 어떻게 만실과 대기를 줄줄이 이어갔는지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을까 싶어 적어본다.
나는 따로 홍보를 전혀 안 했다.
본업에서 8시간 이상을 보내고 운영하는데만
매진을 했다.
운영에는 사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한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게 맞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계속 만실이 이어졌다.
메이트들에게 잘해줬을 뿐인데, 그들이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와 스토리로 쉐어하우스의 예쁜 공간과
내가 챙겨주는 일상들을 자주 공유해줬다.
그렇게 소개의 소개로 대기의 대기로!! 이어갔다.
이것이 바로 N 잡러의 시작!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나는 직장에서도 틈틈이, 집에서도, 심지어 신혼여행을 갔던 하와이에서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본업을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있다는 걸 알게 된 첫 번째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돈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 경험 " 치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퇴근 후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고되고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그리고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면서도 여러 어려움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 하길 잘했다! "라고 셀프 칭찬을 날려주는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