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다는 감각에 대하여

by 윤아영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성과가 좋을 때, 계획이 차질 없이 굴러갈 때,

주변의 인정이 따를 때 찾아오는 감각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날,

특별하지 않았기에 설명할 필요도 없었던 날에 더 가깝다.

나는 이제야 그 조용한 상태를 ‘잘 살고 있다’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이 감각을 쉽게 믿지 못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을 준비해야 했고, 더 나아가야 했고, 혹시 모를 흔들림을 대비해야 했다.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은 늘 조건부였다.

지금도 괜찮지만, 계속 괜찮으려면 더 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었다.

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잘 지내고는 있는데요.”

그 문장은 늘 중간에서 멈춘다.

뒤이어 붙는 말들

—아직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하고,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될 것 같고—

이 그 감각을 금세 지워버린다.

나는 그럴 때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오늘 하루를 몸으로 느끼면 어땠나요?”


질문이 생각에서 감각으로 옮겨가면, 표정이 달라진다.

긴장이 조금 풀리기도 하고, 어깨가 내려가기도 한다.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은 대개 설명이 아니라,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막연한 느낌으로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로 정리되기 전의 상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각.

상담에서는 그 감각을 서둘러 해석하지 않고, 잠시 머물러 본다.


나 역시 오랫동안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해 왔다.

이 선택이 나중에 도움이 될지,

이 속도가 뒤처지지는 않을지,

지금의 안도가 나태함은 아닐지.

그런 질문들 속에서 현재는 늘 통과해야 할 구간이 되었다.

머물 수 없는 장소.

그 사이에서 나는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을 자주 놓쳤다.


이 나이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은 목표가 아니라 신호라는 것을.

몸이 조금 덜 긴장되어 있는지,

하루를 마치며 스스로에게 거친 말을 하지 않았는지,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았는지.

그런 작은 신호들은 대부분 아주 미묘해서,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요즘의 나는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할 때, 결과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오늘 내 몸은 어떤 상태였는지,

마음은 어디쯤에 머물렀는지.

누군가의 속도를 함부로 재촉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그 질문 앞에서 몸이 조금이라도 ‘맞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날은 충분히 잘 산 날이다.

상담가로서 나는 ‘잘 살고 있나요?’라는 말을 쉽게 건네지 않는다.

그 말에는 각자의 기준과 속도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대신 묻는다.

“요즘, 스스로를 대할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그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삶이 몸과 마음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비춘다.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은 대개 그 질문에 머무는 동안, 서서히 올라온다.


물론 여전히 흔들리는 날도 있다.

예전의 기준이 다시 고개를 들고,

더 빨리 가야 할 것 같고,

뒤처진 것은 아닌지 불안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애써 확신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감각으로 돌아간다.

숨은 어떤지, 몸은 조여 있는지, 아니면 조금 느슨해졌는지.

감각은 언제나 정직하다.

꾸며지지 않은 상태로 지금을 말해준다.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은 남에게 보여주기 어렵다.

눈에 띄는 성취도, 분명한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각은 삶을 오래 가게 한다.

무너지지 않게 하고, 소진되지 않게 하며, 다음 날을 다시 열 수 있게 한다.

나는 이제 그 감각을 신뢰하려 한다.

크지 않아도, 분명한 쪽을.


이 나이에 나는 더 이상 잘 살고 있다는 증거를 모으지 않는다.

대신 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조용히 찾아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신호를,

오늘 하루 안에서 한 번쯤은 붙잡아 보려고 한다.

마치 안부를 묻듯이.


잘 살고 있다는 감각에 대하여,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감각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7화다정함을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