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삶을 오래 목표로 삼아 왔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고, 판단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성숙이라고 믿었다.
흔들림은 미숙함의 증거이고,
감정의 동요는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흔들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흔들림을 밀어내는 태도보다,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상담실에서 흔들리는 날들은 대개 이런 말로 시작된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요.”
그 말 뒤에는 실망이 묻어 있다.
한동안 안정적이었고, 이제는 예전의 불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다시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는 고백이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아진 건 맞아요. 다만 흔들림이 다시 찾아온 것뿐이에요.”
흔들림이 돌아온 것이 곧 실패는 아니라는 말은, 생각보다 자주 잊힌다.
나 역시 흔들리는 날이 있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아침,
사소한 말에 오래 붙잡히는 오후,
이미 지나간 선택을 다시 꺼내보는 밤.
예전 같으면 나는 그 흔들림을 빨리 없애려 애썼을 것이다.
이유를 분석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단단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반응한다.
아, 오늘은 흔들리는 날이구나.
그렇게 인정하는 순간, 흔들림은 이전보다 덜 거칠어진다.
노자는 오래전에 이렇게 말한다.
자애하면 용감할 수 있다고.
자기를 다그치지 않고,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도망치지 않을 힘을 얻는다고.
흔들림을 문제로 만들 때, 우리는 더 흔들린다.
감정이 올라왔다는 사실보다,
왜 아직도 이런 감정이 드는지를 묻는 순간
마음은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상담실에서 나는 그 질문을 잠시 내려두자고 제안한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 흔들림은 무엇을 알려주고 있을까요?”
질문의 방향이 바뀌면, 흔들림의 의미도 달라진다.
어떤 흔들림은 피로에서 오고, 어떤 흔들림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또 어떤 흔들림은 오래 미뤄둔 감정이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흔들림은 갑작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된 신호일 때가 많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듣는 일, 그것이 흔들림을 대하는 가장 조용한 용기다.
요즘의 나는 흔들리는 날에 몇 가지를 허락한다.
속도를 늦출 것, 결론을 미룰 것, 스스로에게 거친 말을 하지 않을 것.
이 허락들은 흔들림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더 커지지 않게 한다.
파도를 막는 대신, 파도 속에 오래 머물 수 있게 한다.
상담가로서 나는 흔들림을 회복의 반대편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회복은 흔들림을 포함한 상태에 가깝다.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흔들림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그때 흔들림은 관리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리듬이 된다.
이 나이에 나는 더 이상 단단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흔들리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호흡, 돌아올 수 있는 질문, 돌아올 수 있는 관계.
그 자리가 있다면, 흔들림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흔들려도 괜찮은 날들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어떤 관계에서 내가 나를 잃는지.
흔들림은 삶의 경고음이 아니라 안내판에 가깝다.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이제 나는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날에도 삶은 이어지고,
그런 날들 사이로 우리는 다시 걸어간다.
잘 사는 삶은 흔들리지 않는 삶이 아니라,
흔들릴 때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삶이라는 것을,
나는 이 나이에야 배웠다.
흔들려도 괜찮은 날들.
그날들이 있었기에 나는 내 속도를 알게 되었고,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외우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흔들리면,
조금 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