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 Feb 21. 2016

고흐의 생애를 미디어 아트로 느껴보다

<반 고흐 인사이드전에 다녀와서>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린 반 고흐 인사이드전에 다녀왔다. 페이스북에서 홍보 게시물을 본 뒤 매우 가고 싶던 전시회였다. 미디어아트 전시란 게 좀 생소하긴 지만, 시각적인 화려함이 볼만할 것 같았다. 전에 고흐의 생애에 관한 강연들은 적이 있어서 이걸 어떻게 구현해냈을지 관심이 갔다.



표를 구입하고 들어서자마자 그림들이 영상으로 펼쳐다. 사방에서 각각 다른 그림들이 움직다. 전시 음악 나오며 새로운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1 전시실에서는 고흐의 화가 인생 중에서도 초창기를 담아내고 있다. 당시 파리는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인상주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도시의 인상주의 물결 안에서 모네와 르누아르, 드가 등의 화가들이 등장했다.


이에 반해 고흐는 네덜란드 시골 작은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고, 이러한 움직임을 알지도 못했다. 고흐는 성격상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도 못했고 일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런 고흐의 작품 생활 동안 힘이 되어준 건 남동생 테오였다. 테오는 고흐에게 경제적 후원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면 고흐의 생애를 잘 알 수 있다.



시골에 살고 있던 고흐는 빈민층과 노동계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표작이 <감자 먹는 사람들>인데, 도시 화가들에 비해 고흐의 그림은 촌뜨기 취급을 받기만 했다.


1 전시실에는 고흐의 초창기 그림뿐만 아니라 당시 파리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도 나온다. 모두가 한 번쯤 보았을 법한 모네의 <인상 : 해돋이>나 <양산을 든 여인>, 르누아르의 밝고 명랑한 <물랭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같은 그림들도 나온다. 이렇게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니 당시 어떤 사조와 그림이 성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고흐의 그림이 얼마나 다른 길을 가고 있었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2 전시실에는 고흐가 파리로 간 뒤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인상파를 접하고 난 뒤 고흐가 한 생각들, 인상주의 화풍과 신인상파의 점묘법을 받아들인 고흐, 그리고 일본 미술에 눈 뜨고 풍부한 채색풍으로 변한 그림들, 방탕한 도시 생활에 대해 나온다. 영상 초반에는 쇠라 같은 점묘법 화가들의 그림이 나오다가 고흐가 심취했던 일본 미술 등장한다. 인상주의 그림에 대한 고흐의 첫 생각, 파리에서의 힘든 삶이 짤막한 문구들로 지나간다.


보통 전시회장처럼 뻥 뚫린 사각 공간이 아니라 중간에 기둥도 있고 의자에 앉아 감상할 수 있었다. 역 안의 벽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는데, 벽 사방에 그림을 비고 있다. 악을 들으며 감상하다 보니 다른 전시회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기분을 느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미디어아트라서 새로웠던 것도 있겠지만, 역이라는 독특한 공간에 있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한 영상이 나올 때 전시 공간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때도 있었다. 나는 감상할수록 고흐가 안타까웠다.



고흐는 일본 같은 곳을 꿈꾸며 아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고흐의 상징인 농도 짙은 노란색과 코발트 블루가 탄생한다. 아를에서 그만의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하고, 풍경화보 인물화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갈수록 고흐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그의 소용돌이치는 내면은 강한 붓터치와 곡선으로 나타났다. 정신병원에서 감정이 어느 때보다도 격렬해진 고흐는 그의 요동치는 내면을 <별이 빛나는 밤에> <붓꽃> 같은 명작로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림과 치료로도 극복하지 못하며 오베르의 푸른 밀밭에서 생을 마감다. 고흐가 테오에게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쓰여있다. “나는 그림에 내 생명을 걸었다”라고.


네 개의 전시실 거쳐 따라간 생애의 종착지는 죽음이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고흐의 죽음을 접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치 고흐의 인생을 차례차례 따라간 느낌이었는데, 결말이 고통스러운 죽음이라 나도 조금 절망스러웠다. 그림이 미디어아트로 생생히 재현되었고 음악이 생애와 걸맞게 작곡되었기 때문인지 더 감정이입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다. 고흐는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받았을 테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좋은 전시회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미디어아트가 신기해서 그 수 있고, 내가 이 전시회의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림을 보거나 글로 읽는 것보다 더 다감각적으로 고흐를 느낄 수 있다.(음악이 감정이입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포틀래치라는 작곡가가 이 전시회를 위해 작곡한 걸로 보인다.) 


다만 영상에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꽤 나오기 때문에 고흐의 동시대 미술을 공부하고 가야 좋을 듯싶다. 마찬가지로 고흐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오면 좋데, 그렇지 않더라도 고흐의 그림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회다. 고흐의 생애에 관심이 없더라도 전시를 보다 보면 흥미가 생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