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맥베스를 보고난 후
무더위가 가득 자리한 8월 초 여름밤이었다. 연극 맥베스 관람을 위해 국립극장을 찾았다. 동대입구역에 내려 지도상에서 손가락 한마디 정도 거리에 있는 국립극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도로 볼땐 짧은 거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걷다 보니 산 하나를 등반하는 것처럼 멀고 높게만 느껴졌다. 한여름 더위에 등과 정수리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중간쯤 왔을 땐 이미 옷이 축축하게 젖어버리고야 말았다. 극장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계단에 도착했을 땐 연극을 보기 위해 미리 읽었던 맥베스의 명대사가 생각이 날 정도로 더위에 정신이 혼미해져 버렸다.
"죽음의 환영이여 넌 열기에 들뜬 뇌가 만들어낸 마음속 허상이냐"
실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국립극장 해오름관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 들뜬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조명과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자리에 앉아 팸플릿 속 인물 관계도를 펼쳤다. 맥베스는 '황정민'이 맡았다. 딱히 그의 연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묘하게도 그가 나왔던 영화들은 빼놓지 않고 죄다 본 것 같다.
내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였다. 그때 보았던 스케이트장 씬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배우가 갑자기 등장해 영화 전체를 돌돌 말아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삼킨 뒤 지근지근 씹어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밀정'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엄태구' 같았다고나 할까. 실로 놀라운 존재감을 발산한 뒤 그는 거의 매해 영화를 찍었다. 어떨 때는 열대의 나라 목사님이 되기도 했고, 독일에 파견된 광부가 되기도 했으며, '유아인'을 뚜드려 패는 베테랑 형사가 되기도 했다. 매해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다작하는 그 모습에 모종의 의문이 들 때쯤 연극은 시작되었다.
"눈이여, 이 손이 하는 짓을 못 본 체하라.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그 일은 기어코 일어나리니"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왕 덩컨을 죽였다. 그리고 황정민은 어두운 무대에서 작은 조명을 받으며 차근차근 이전에 자신이 맡았던 배역들을 제거해 나갔다.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도 부당거래의 '최철기'도 서울의 봄 '전두광'도 모두 죽여 없애 버렸다. 그 순간 나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그의 숨결과 흐느낌을 들었으며 내젓는 팔다리의 움직임을 보았다. 영화를 통해서는 전해지지 않는 생동감 있는 메시지들을 그가 나에게 계속해서 전해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완전히 맥베스가 되어버렸다.
연극의 막바지, 절규하는 맥베스를 보게 되자 작은 점 같았던 모종의 의문은 이제 나의 뇌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맥베스'가 될 수 있었을까. 대사를 외고 거울을 보며 표정을 다듬고 동선을 짜 몸동작을 익히고, 다른 사람들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매일매일 맥베스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맥베스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매해 작품을 찍어내며,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그는 어떻게 맥베스처럼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일까.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 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 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섰을 때 발목까지 적시는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가방 속에서 우산을 꺼내 쓰고, 기절할 것만 같던 더위에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뒤범벅하며 올랐던 계단을 되짚으며 걸어 내려갔다. 계단 사이로 흐르는 물과 우산을 두드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배우의 삶을 생각했다. 배역을 맡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가 끝나면 다시 내가 되는 삶. 내내 덥다가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는 날씨처럼, 단 한번의 쉼 없이 부지런히 모습을 바꾸는 절기처럼 때에 따라 작품에 따라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그 삶이 부럽기도 하고 어쩐지 안쓰럽기도 하였다. 마지막 계단을 짚으며 이내 그쳐버린 비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