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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Aug 30. 2024

열대야

덥다는 것이 무엇인가 실로 고민하게 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에 입을 가져다 대고 "아아"하며 소리를 지른 뒤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지만 알다시피 그럴수록 몸은 더 빨리 더위를 흡수하고야 만다. 한껏 뜨거워진 몸뚱이를 식히는 방법은 역시 에어컨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문을 다 닫고 선풍기를 꺼버린 뒤 에어컨을 터보로 튼다. 몸이 식은 것이 느껴지고 나면 에어컨 온도를 높인 뒤 꺼짐 예약 설정을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전기세 폭탄이라는 무서운 미래는 한 달 뒤 내가 감당하기로 하고 더위에 지친 눈이 기분 좋은 시원함에 스르르 감기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겨우 잠이 든다.


평소와 같이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식당과 사무실을 오가는 짧은 거리에도 몸은 더위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해를 받는 정수리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몸속 깊은 곳에서는 습기와 열기가 만나 축축하고 찝찝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덜미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주룩하고 흐르기 시작했을 때,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점심을 함께 먹은 동료들과 잠시라도 더위를 식혀 줄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로 한다.


"맴맴"이 아닌 "찌륵찌륵 끼익끼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귀가 찢어져라 자동차 소리, 도심의 소음과 경쟁하듯 우는 매미의 울음 소리 때문에 귀를 막고 들어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골랐다. 시원한 멜론 맛의 아이스크림, 물고기 이름이지만 과일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과 어릴 적이라면 절대 먹지 않을 팥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고른 우리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마치 전장에 뛰어드는 병사라도 된 것처럼 비장한 각오로 편의점 문을 열고, 높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의도 한복판의 거리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문을 나섬과 동시에 한여름의 공격이 시작 됐다. 우선 다시 시작된 매미의 이상한 울음소리가 귀를 후벼 파며 시끄럽게 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 순간 수류탄인간 싶을 정도로 커다랗고 검은 것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대왕 매미였다. 소름 돋게 커다란 매미에 또 한 번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본격적으로 지지기 시작했다. 가열차게 이어지는 더위 공격에 질 수 없다는 각오로 맹렬히 아이스크림을 흡입했고 사무실까지는 이제 절반 정도의 거리가 남아 있었다. 느려지는 걸음걸이와 높은 습도로 인해 질척 질척 무거워진 발걸음 때문에 이미 우린 녹초가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아이스크림마저 "뚝뚝" 눈물을 흘리며 힘겨워했다. 먹는 아이스크림보다 녹아서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 때쯤 머릿속이 핑 돌며 어지러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우리가 진다. 기나긴 더위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더위의 기세가 더 맹렬하게 치고 올라오던 그때 저 멀리 회사 유리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문만 통과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 걸음을 옮기던 차에 팔이 마치 김처럼 아니 바게트처럼 바삭바삭 마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리는 움직일 때마다 뜨거운 바닥에 조금씩 녹아내리며 덩어리 져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한여름의 열기가 아무리 뜨겁고 맹렬하기로서니 몸이 마르고 녹아내릴 정도의 일이란 말인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던 와중에 동료들 모두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벌벌 떨며 "아악"하고 큰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눈이 떠지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힘들게 잠든 내 방 침대 위였다. 잠이 든 와중에도 무더위에 흘린 땀으로 인해 침대 시트가 눅눅하게 젖어 있었고 목덜미와 가슴팍에 찝찝한 땀의 기운이 느껴졌다. 예약 시간이 다 되어 작동이 멈춘 에어컨을 다시 켰다. 그리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히며 생각했다.


'와 여름이 원래 이 정도로 더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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