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의 정석
한여름이었어요. 비도 잘 내리지 않는 아주 거친 여름이었죠. 그해 여름에는 열사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도 많았고, 강렬한 햇살에 나무들마저 한여름의 푸릇한 생기를 잃어버릴 정도였죠. 푸른 잎들이 쭈글쭈글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더운 여름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름이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 잘 만나봐, 너도 학교 다닐 때 지나가면서 봤을 수도 있어."
"오우 고마워. 일 끝나고 연락해 볼게. 아주 고맙다."
가령 소개팅 같은 것 말입니다. 네, 이건 저의 소개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해 여름은 아주 끔찍한 여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겠네요. 저는 에어컨이 켜진 자취방 바닥에 누워 여름을 녹여내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죠. 그때 문득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위에 지레 겁먹어 바깥 외출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이대로 여름을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대학교 동창에게 소개팅을 부탁했습니다.
소개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대학교 사람이고, 서로 같은 친구를 공유하고 있는 입장인지라 만나기 전부터 대화가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이 여름 소개팅에 스파게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름이 시작되고 흘린 땀이 1년 내 흘릴 땀의 절반이 넘지 않았나 하는 과장된 생각에 미쳤을 때, 저는 그 사람과 삼계탕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삼계탕의 힘으로 땀과 함께 배출된 저의 건강을 다시 되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도 삼계탕을 원한다면 이건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죠. 긴 고심 끝에 저는 이야기했습니다.
"ㅇㅇ씨 저희 그럼 만나서 삼계탕 먹을까요?"
"네, 좋아요."
운명은 이런 걸까요. 처음 만나는 남녀가 같은 음식을 원한다는 것. 생각보다 수월하게 삼계탕을 먹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해서 먹는 것이지만 왠지 그 사람도 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소개팅에서 삼계탕을 먹게 되었다고 말하자 가장 친한 친구가 저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수현아, 처음 만난 사이에 닭다리를 들고 뜯는 게 말이 되냐. 너 더위 먹었냐. 빨리 메뉴 바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아니 삼계탕 던진 시점부터 망하긴 했지만 수습이라도 해보자. 빨리 제가 죄송했습니다. 스파게티 먹는 건 어떨까요. 초밥은 어떠세요. 아니 제가 확인해 봤는데 너무 더워서 닭들이 다 죽었대요. 뭐 이렇게라도 말해서 바꾸란 말이다. 그리고 이 더위에 삼계탕이라니 제발 정신 차려"
팀장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내가 40년 정도 살았죠.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가령 회사 경비실로 침대를 배송시켜서 다시 화물차를 불러 침대를 자취방으로 옮기느라 부서원(나)을 부려 먹었던 사람도 있고, 탕비실 물품을 채우는 걸 맡겼는데 탕비실 물품구입비 50만 원을 자기가 그 과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몽쉘통통만 사놓은 사람도 있었어요. 또 회식 장소 예약을 맡겼더니 회전초밥집을 예약해서 우리 부서원들이 대화 없이 밥을 먹게 만든 사람도 있어요. 대단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이런 사람도 있죠. 소개팅을 가는데 자기가 삼계탕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삼계탕집에서 소개팅 약속을 잡는 사람. 근데 이게 다 수현씨네요. 수현씨 본인을 너무 많이 믿지 마세요. 그래도 나는 수현 씨 응원합니다."
모두의 응원을 등에 업고 저는 결전의 장소로 달려갔습니다. 덥지만 신경 써서 옷도 입고 구두도 오랜만에 신었어요. 대학로에 있다는 꽤 유명한 삼계탕집에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맛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10분 먼저 도착해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띠링'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었죠. 그 사람 웃으며 아는 척을 하고 제 앞자리에 와서 앉았습니다. 마주 앉아 앞치마를 두른 우리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뚝배기 안에 누워 있는 닭을 사이에 두고 앉은 남녀, 두 사람은 이 뜨거운 여름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가게 될까요. 앞접시에 김치와 깍두기를 덜고 소금과 후추를 탈탈 털며 저는 상상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노란 단풍과 하얀 눈과 초록의 새싹이 가득한 풍경의 미래를.
여러분 저의 소개팅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을 내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잘 되지 않았더라도 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삼계탕을 먹었으니 그걸로 되었고, 또 만약 그사람과 잘 되었다면 삼계탕까지 맛있게 먹었으니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러니 여러분 소개팅에서 먹고싶은 거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