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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Sep 30. 2024

우유 알바를 하다 생긴 일

우유에 방부제라도 타나?

  나는 가끔 무모한 짓을 한다. 며칠 전, 9월 26일에 9월 1일, 9월 5일 출고된 우유를 마셨다. 소비 기한이 각각 12일, 16일까지였으니까 대략 계산해 봐도 소비 기한이 10일 정도는 넘은 제품이다. 처음엔 당연히 마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유가 겉보기에 너무 멀쩡해 보이는 거다. 팩이 부풀어 오르거나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들고 흔들어 보니 여전히 경쾌하게 찰랑거렸다. 시험 삼아 팩 주둥이를 살짝 뜯어보니 냄새도 이상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우유를 컵에 따라 봤다. 색깔도 이상 없고…. 음…, 어쩔까 하다가 살짝 맛을 보니, 내 혀가 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맛도 괜찮은 듯했다. 우유 팩 안도 깨끗했다. 우유가 오래되어 덩어리 지거나 한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우유가 아깝기도 하고, 우유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음식 버리지 말라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말씀이 귀에 쟁쟁하기도 해서, 마셨다.      


‘꿀꺽!’     




  이 우유는 학교 우유 급식 알바에서 남는 우유를 가져온 것이다. ‘남는 우유’? 매일 아침 각 반 앞에 우유를 갖다 두고 창고로 돌아와 전날 마신 우유 빈 팩이 든 상자들을 정리하다 보면 가끔 뜯지도 않은 ‘새’ 우유를 발견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어제, 혹은 그전에 배식되었던 우유다. 이게 바로 ‘남는 우유’다. 이렇게 우유가 남는 이유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결석생이 생겨서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나중에 마시려고 다른 곳, 이를테면 사물함이나 책상 속에 두었던 게 뒤늦게 나오는 거일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그냥 우유가 먹기 싫어서 내놓았을 수도 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요즘 우유 말고도 달고 맛있는 음료가 얼마나 많은가? 애들의 우유를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이유야 어떻든 이렇게 마시지 않고 나온 우유는 어차피 폐기 대상이라 내가 집으로 가져간다.      


  처음에는 며칠 지난 우유, 그것도 상온에 있던 우유를 가져온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게다가 지금이야 날씨가 서늘해졌지만, 알바를 시작할 당시에는 학교가 막 개학한 8월 말이었다. 이번 여름이 좀 더웠나? 이런 날씨에 교실에서 하룻밤, 아니 며칠 밤 묵은 우유? 당연히 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우유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나? 일일이 화장실에 가서 따라 버리고 팩을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며 마침 일을 가르쳐 주려고 나왔던 우유 급식소 소장한테 “이거 어떡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소장이 나한테 그냥 우유를 집에 가져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깜짝 놀라 “이 우유를 가져가라고요? 이 날씨에 하룻밤 밖에 있던 우유인데요?” 했더니 도리어 소장이 펄쩍 뛰며 말했다. “아무 이상 없어요!” 소장 말로는 학교에 납품되는 우유가 제일 신선한 거라며 이 정도로는 절대 상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오히려 상온에 둬서 찬기가 가신 덕에 우유가 더 고소할 거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남는 우유 하나를 뜯더니 진짜 괜찮은지 아닌지 맛보라고 권했다. 나는 정말 마시기 싫었지만, 코 앞에 바짝 들이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살짝, 진짜 살짝, 입술 끝에 우유를 적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혀 끝에 느껴지는 우유는 정말 맛도, 냄새도 괜찮았다!     


  너무 신기해서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검색한 정보에 따르면 우유는 0~5도 냉장 보관 기준으로, 뜯지 않은 상태라면 제조일로부터 45일 정도까지 섭취 가능하다고 했다. 우유를 마실 수 있는 기한은 생각보다 굉장히 길었던 거였다. 그걸 보니 여태 냉장고에 넣어 둔 우유의 소비 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상했을 거라며 전부 버리곤 했던 게 새삼 아까워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냉장 보관’ 한 경우였다. 학교의 남는 우유는 상온에 둔 거다. 상온에 둔 우유의 마실 수 있는 기한은 어떻게 될까? 역시나 인터넷 지식인이 말하길, 우유를 개봉하지 않았다면, 상온에 보관한 경우, 소비 기한이 지나면 균이 번식하는 게 보였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유를 냉장고가 아닌 실외에 두었다면 소비 기한 내에 마시는 게 건강상 안전하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소장이 나한테 괜찮다며 마시라고 들이밀었던 우유는 이론상 안전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인터넷 지식인에서 말하는 ‘상온’이란 10~30도 사이다. 이번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은 35도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덥고 습한 날씨에 있던 우유가 멀쩡할 수 있었던 걸까? 생각보다 우유 팩의 보존 기능이 뛰어난 걸까? 아니면 우유가 정확히는 바깥이 아닌 교실에 있었을 거고, 요즘 학교 교실에서는 에어컨을 트니까 30도 이하 환경에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우유에 방부제라도 타나?     


  하여간 며칠 지난 우유를 마셔도 이상 없었기에 그 이후 빈 팩을 정리하다가 남는 우유가 생기면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덕분에 냉장고가 우유 풍년이 되었다. 우유가 비쌀 때에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으니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찬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파 설사한다는 남편도 ‘신선한’ ‘00’ 우유는 배 아프단 말 한번 없이 잘만 마셨다.      


  그런데 문제는 추석 다음 주였다. 추석 연휴가 길어 남는 우유가 많이 나왔다. 대충 우유가 많이 남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우유가 한두 개일 때는 금방 마실 수 있으니 좋았지만, 너무 많으니 처치 곤란이었다. 게다가 집에 가지고 와서야 알았는데, 그중에는 아주 오래된 우유도 섞여 있었다. 가져온 우유를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으려는데 문득 낯선 숫자가 눈에 스치는 거였다. 우유 팩을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제조일이 무려 7월이었다! 8월인 것도 있었다. 그러니까 방학 전 우유가 섞여 나온 거였다. 어쩌다가 방학 전에 배식받은 우유가 지금에야 나왔는지 그 까닭이야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그 우유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7월 4일, 8월 20일 제조 일자가 선명히 박혀 있는 우유. 그런데 겉보기엔 너무 이상 없어 보인다. 


  상식적으로는 당장 버려야 하는 게 맞았다. 2달이 넘은 우유라니! 상해도 팍 상했을 거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유 팩은 외관상 정말 멀쩡했다. 제조일 숫자만 없다면 어제, 아니, 오늘 아침 나온 우유라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팩이 불룩하거나 했다면 내가 가져왔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겉보기에는 말끔했던 거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상했을까? 진짜 상했을까? 만약 그대로라면 마실 수 있는 걸까? 제조일이 7월이라고 박혀 있는 우유 팩을 집어 입구를 열었다.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아봤다. ‘킁킁.’ 그냥 내가 아는 우유 냄새였다. 시큼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맛을 한번 볼까?’ 하다가 그것만은 그만두었다. 아무리 냄새가 이상 없다지만 차마 혀까지 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눈 딱 감고 싱크대에 우유를 부었다. 개수대로 흘러 들어가는 우유는 멀쩡해 보였다. 역시 괜찮은 거였나? 스멀스멀 마음 한구석에서 조그맣게 아깝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우유를 다 쏟아낸 팩을 헹구며 보니 위에 덩어리가 조그맣게 생기는 참이기는 했다. 그래, 어쨌든 7월 우유는 버리기를 잘한 것 같았다.     


  8월 제조일이 박힌 우유는, 그래도 8월이라 차마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할 것 같아 대신 몸에 발랐다. 세수하고 샤워할 때 사용했다는 말이다. 물론 우유가 섞인 목욕물을 정화하는데 물이 엄청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대중목욕탕인가 어디선가에서 봤지만, 싱크대에 버려도 어차피 정화하는 데 물이 들어갈 거였다. 그러니까 이왕 버릴 바에는 내 피부라도 좋게 만들고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죄책감을 합리화시키며 오랜만에 왕비가 된 듯한 호사를 누렸다. 이 우유도 역시 우유 냄새가 진하기만 할 뿐 말짱했다. 우유를 몸에 바르며 다시 한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물을 오염시키며 몸에 바를 게 아니라 마셨어야 하는데….   

  

  이제 9월 제조일 우유만 남았다. 9월 제조일이라지만 날짜는 1일부터 다양했다. 물론 이것도 소비 기한이 지난 건 버려야 하는 게 맞았다. 그렇긴 하지만 7월 제조일 우유도 멀쩡해 보였고, 8월 제조일 우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9월 제조일 우유는 괜찮지 않을까? 비록 소비 기한은 10일 정도 지나긴 했지만 괜찮을 거다, 아마도….     


  그래서 9월 1일, 3일 제조 일자가 박힌 우유를 뜯었다. 혹시나 이상하면 바로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냄새, 색깔, 맛, 모두 별 이상 없는 듯했다. 에라, 괜찮겠지.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냥 마셨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 하면….     


  오후 들어 배가 살짝 불편한 것 같았다. 겁이 더럭 났다. 우유 때문일까? 역시 상했던 걸까? 마시지 말아야 했었는데…. 혹시 식중독? 배에 온 신경이 집중되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거기까지였다. 크게 아프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배가 살짝 불편했던 건 우유 때문인지, 점심으로 먹은 다른 음식 때문인지, 아니면 소비 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신다고 너무 예민해져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마신 9월 1일, 5일 제조된 우유는 결국 별 이상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남은 우유는 모두 그 이후 제조 일자이기 때문에 그냥 마시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이 소비 기한 지난 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고 해서 직접 마시는 대신 치즈를 만들고, 수프를 만드는 데 활용할 생각이다.     


내가 마신 9월 1일, 9월 5일 제조일자가 박힌 우유. 다행히 마신 후 별 탈은 없었다.






  이 일로 우유의 소비 기한이 생각보다 길다는 걸 제대로 배웠다. 또 소비 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당장 그 식품이 상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요즘처럼 식품 가격이 비쌀 때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장바구니 지출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식품을 제대로 보관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소비 기한 내에 먹는게 가장 좋다. 그나저나 너무 신기하다. 우유가 어쩜 이렇게 오랫동안 멀쩡할 수 있었을까? 교실에 혹시 냉장고가 있는 걸까? 아니면 진짜 우유에 방부제라도 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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