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괜찮아요
얼마 전의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열심히 우유를 나르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수위’ 아저씨(이 명칭이 아직 사용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침에 학교 정문과 건물 문들을 열고 불을 켜는 일을 하시는 분이다. 내가 어릴 땐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을 ‘수위’라고 불렀다.)가 쭈뼛거리며 오시더니 말을 거시는 거였다. 내용을 들어보니 아침에 층마다 복도를 돌며 불을 켜고 있었는데, 어느 반에서 마시지 않은 우유 4팩이 우유 상자 옆에 나와 있더라는 거였다. 마침 너무 목이 말라 그 우유를 다 마시고서는 내심 찔려서 나한테 고백하러 온 거였다. 니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는 우유는 폐기 대상이라 집에 가지고 가고는 있었지만, 우유가 계속 쌓이는 바람에 좀 처치 곤란이던 참이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우유를 마셨다니 손이 가벼워져서 도리어 고마울 판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목이 말라 그랬다’며 연신 사과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순간 나는 아저씨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아저씨는 총총 다시 사라졌다.
아저씨의 말이 그 후에도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우유를 마음대로 가져가서 미안하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뭔가 너무 과한 것 같았다. 뭔가 … 그러니까 … 마치 내가 주제넘은 행동을 해서 잘못했다고 하는 듯한 자세였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학교라는 세계가 어릴 때와는 다르게 보이게 되었다. 어릴 때에는 학교에는 단지 두 부류의 사람만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 물론 그때도 수위(또 이 단어를 썼다.) 아저씨가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식당 매점 아줌마도 있었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그때는 우리, 즉 학생이 모든 걸 다 했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고, 우유도 직접 날랐다. 청소? 청소도 당연히 학생이 하는 거였다. 화장실 청소, 화단 청소도 모두 조를 나누어서 했다. (물론 ‘해야 하는 것’과 ‘제대로 했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지금은 선생님과 학생 이외에도 학교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시설 관리하시는 분(이분의 직함도 제대로 모른다. 아침에 내가 우유를 나를 때 항상 화장실을 손보고 계신다. 이것저것 학교 기물을 수리하시는 분 같다. 이 글을 쓰며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보니 ‘교육공무직 학교 시설관리직원’이라고만 나온다), 급식 조리원, 배식원, 보안관, 지킴이…. 이외에 급식 식자재 및 내가 하고 있는 우유 납품 업체 등 많은 사람이 학교와 연관을 맺고 있다. 나를 포함해 이들에게 학교라는 곳은 단지 하나의 ‘일터’ 일뿐이다.
학교를 일터로 보면 이 세계에는 분명히 층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선생님과 학생은 그 위에 있고 나처럼 몸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밑에 존재한다. 학교 안의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일하다 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느끼게 된다. 호칭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여성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선생님’과 ‘여사님’으로 나뉜다. 지금은 그나마 존중하는 의미에서 ‘여사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그냥 ‘아줌마’였다. 나는 학원에서 알바하며 ‘선생님’이라고도 불려보고, 학교 급식 배식, 방역 일을 하면서 ‘여사님’도 되어 봤다. ‘선생님’과 ‘여사님’ 일 때의 기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우유 배분 일의 꼭대기에는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분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매점에 붙어 있는 식당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애가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영양사 선생님'이란 분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식단표를 짜는 분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 즉 모든 식자재 납품을 관리하는 분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우유 관리 말고도 모든 급식 식재료는 영양사 선생님의 감독을 받는 거다. (혹은 아직도 내가 잘 모르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영양사 선생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하고 오기 때문에 영양사 선생님 얼굴을 뵌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매일 아침 우유를 나를 때 영양사 선생님의 방에 우유 2팩을 둔다. 처음에는 선생님 드시라고 두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유 검수용이었다. 또 한두 번 우유 수량을 잘못 계산해서 놓고 온 날 업체를 통해 지적을 받았다. 그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감독을 받는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 어쩐지 영양사 선생님이라는 분이 급식실이라는 세계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식자재와 사람들 왕 같은 존재 말이다.
아무리 뭐라 해도 ‘선생님’과 ‘여사님’는 같지 않다. 둘 사이의 간격은 좁힐 수 없다. 하지만 ‘여사님들의 세계’에서는 서로 동등하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수위 아저씨가 나한테 그런 모습으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수위 아저씨가 모습은 학교 블루 칼라에서의 세계에서도 다시 층위가 나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낯설고 조금은 서글펐다.
그날 이후 어쩐 일인지 아저씨와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아직도 입에 머금고 있다.
‘아저씨, 다음에 또 목이 마르면 그냥 우유 드세요. 괜찮아요. 저한테 너무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다음에 아저씨를 보게 되면 이 말을 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