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이해한다는 착각
우리나라 주부라면 익숙한 대결 구도가 있다.
‘전업맘 vs. 워킹맘’
나는 결혼 후 내내 전업 주부로 살아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대학 동창들은 대부분 워킹맘이다. 그래서 나는 워킹맘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작년 연말이었다. 한 대학 동창 친구와 잠시 만났다. 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줄곧 일하다가 작년 초에 퇴직했다. 친구한테는 애가 둘 있는데 한 명은 대학에 가서 지금 군복무 중이고 다른 한 명은 올해 고3이 된다. 친구는 그동안 일할만큼 일했으니 이제 쉬고 싶기도 하고, 둘째 입시 뒷바라지도 제대로 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참 수다를 떨었다. 주로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남편이 퇴직하면?’으로 흘러갔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내가 요즘 남편한테 퇴직 이후에도 집에 가만히 있을 생각 하지 말라고, 아무 일 없이 집에 가만있으면 나랑 부딪힐 게 뻔하니 지금부터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나갈 거리를 알아보라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 퇴직 이후에도 30-4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연금에만 의지하기에는 너무 불안하니 뭔가 할 일을 찾아보라고, 요즘 같은 때는 경비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더라…고 하는데 친구가 갑자기 내 말을 막으며 쏘아붙였다.
“야, 넌 평생 일한 남편을 퇴직 후에까지 그렇게 돈 벌어 오라고 하고 싶니? 좀 쉬게 둬라. 네가 한번 나가 일해 봐라. 얼마나 힘든데. 넌 평생 돈 벌어 와 본 적도 없잖아.”
말문이 턱 막혔다. 갑자기 친구가 아니라 남편이 눈앞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비록 내가 밖에서 돈 벌어온 적은 없지만 집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남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식구들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집에 사는 것도 내 재테크 덕이라고 남편도 아들도 대단하다고 해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친구는 무자비했다.
“그건 전에 살던 집값이 올라서 그런 거잖아? 그리고 재테크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집에 있으면서 그것도 안 하면 어떻게 해? 나는 일하면서도 그 정도 (재테크는) 다 했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평소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내 모습이 갑자기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친구한테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내 사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게 후회되기까지 했다. 기분 같아서는 거하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제야 친구도 자기도 좀 지나치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 이상 나아가지 않고 훨씬 누그러진 어조로 나이 들면 결국 남는 건 부부밖에 없다고, 그러니 남편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친구와의 자리는 적당히 수습되었다. 하지만 내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 정도는 나도 일하면서 다 했어.”
“넌 평생 남편 벌어 온 돈으로 살았잖아.”
“네가 밖에 나가서 돈 한번 벌어 봐. 얼마나 힘든가.”
친구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나를 이렇게, 그러니까 남편 벌어 온 돈으로 집에서 편히 산(혹은 논) 여자로 보고 있었다니!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서로 근황을 나누기를 20년이 넘은 세월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시어머니, 바쁜 직장일, 그러면서 두 아이 학원비를 대려고 종종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최대한 친구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고 공감하려 애썼다. 체구도 가느다란 친구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집과 직장을 다 떠받치려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랬기에 20년 직장 생활 후 이제 쉬겠다는 친구에게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낼 수 있었던 거다. 동시에 친구도 해외 주재원 생활과 국내 생활을 오가며 아들의 심한 사춘기를 홀로 감당하다시피 하고, 알고 보니 뼛속까지 가부장적이고 시댁과 너무 친한 남편, 그리고 의지하지 못하는 친정 때문에 심하게 맘고생하면서 이날까지 온 나를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불현듯 친구는 철저하게 직장인, 워킹맘,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던 것, 그렇게 믿고 확신하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알던 세상이 모래로 쌓은 것처럼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전업맘이고 친구는 워킹맘이었지만 우리 사이에 그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워킹맘 친구들이 많은 나는 그들의 사정을 눈으로 봐 왔기 때문에 그네들의 처지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전업맘과 워킹맘이 대결하는 듯한 분위기가 생겨도 나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오히려 워킹맘 편을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전업맘과 워킹맘의 차이는 단지 마음먹기에 딸린,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가벼이 생각했었다.
그날 깨달았다. 처음부터 워킹맘으로, 전업맘으로 출발했을 때는 둘의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세월이 켜켜이 쌓이자 이제 그 차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각자의 행로가 너무 벌어져 버린 것이다. 각자의 길에서 서로를 보는 눈이 확고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내가 단순히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무 쉽게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다. 가난을 의지의 문제로만 생각한다던지,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을 개인이 열심히 하지 않는 문제로만 치부한다던지 하는 것 모두 이러한 차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상대편과 나 사이의 차이를 너무 단순하게 ‘마음의 문제’로,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걸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름’이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편과 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할 때 상대편의 문제를 하찮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상대편을 존중하고 그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있다. 이런 깨달음이 친구와 사귄 지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왔다. 어쩌면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걸까?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풀 죽어 친구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다행히 남편은 친구처럼 가혹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집에서 내 역할이 크다고, 친구는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빈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고마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친구의 당부대로 되었다. 남편과 사이좋은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친구는 이런 결과를 노린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