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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 폭탄을 맞았다

by 크림동동

우리 아파트는 매월 8일 관리비 고지서가 나온다. 해도 바뀌고 이것저것 정신이 없어 고지서가 나오는 날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주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엘리베이터 앞 각 세대 우편함마다 하얀색 종이가 꽂혀 있었다. 나는 얼른 우리 집 걸 빼서 앞면의 숫자를 훑었다.


‘517,790원’


순간 ‘악’ 소리가 터져 나올 뻔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른 집들은 얼마나 나왔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 다른 주민들도 있어 차마 딴 집 고지서를 들춰 보지는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같이 올라가는 주민들 얼굴을 쳐다보며 ‘저 집은 얼마나 나왔을까?’, ‘저 집은 이 정도 관리비에도 괜찮은 걸까?’ 같은 생각만 했다. 집에 오자마자 얼른 고지서부터 펼쳤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범인은 난방비였다. 난방비가 288,361원 나왔다. 지난달에는 12만 원 언저리였는데 그보다 배나 더 나온 것이다.


고지서.jpg


우리 아파트는 40년도 훌쩍 넘은 오래된 아파트다. 중앙난방이라 각 세대에서 온도 조절을 할 수 없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기관실에서 해 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 중앙난방의 문제는 각 세대에 난방이 똑같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중앙난방일 경우 위층이 제일 따뜻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춥다고 한다. 우리 집은 제일 꼭대기 층이라 다행인 경우다. 우리 집은 사실 따뜻한 정도를 지나 더울 정도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맘 놓고 할 수 없다. 우리 동 아래층, 제일 바깥 라인 세대들에서는 집이 춥다, 냉골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난방비가 이렇게 많이 나온 데에는 기름값이 오른 탓도 있지만 다른 원인도 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각 세대에 난방이 균일하게 되지 않다 보니 기관실은 항상 주민들의 민원에 시달린다. 작년 겨울 한가운데 즈음, 기관실에서는 폭주하는 원성을 막으려는 생각으로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즉, 춥다는 집에 난방이 좀 더 되라고 전체 아파트 난방수 온도 자체를 올려 버린 것이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따뜻했던 우리 집 같은 위층 세대는 너무 더워 갑갑할 지경이 되었다. 마치 여름인 양 반팔을 입고 실내가 너무 건조해서 가끔 창문도 열어야 했다. 위층 세대에서는 이렇게 때아닌 더위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춥다던 아랫집들이 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전보다야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미지근해진 정도이지 충분히 따뜻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래서 위층에서는 난방 온도를 다시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난방비만 많이 나오게 되었다. 하필 정부의 전기, 난방비 인상까지 겹쳐 그야말로 난방비 폭탄이었다. 하지만 기관실은 다시 난방 온드를 내려 달라는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도를 내리면 또 냉골 세대에서 달려온다는 거였다. 이래도 민원, 저래도 민원이라며 난방 온도를 내릴 수 없다고 했다. 기관실의 난처한 처지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비싸게 난방비가 부과되는 현재 상태에 손 대기 싫다는 태도에는 화가 치밀었다. 결국 주민 돈이지 자기 돈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러나 기관실만 탓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잘못은 결국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있다.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온도를 내려 달라고 하면 기관실로서는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민 민원 단톡방에서는 불만이 폭주하지만 정작 그 불만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 그나마 단톡방에서 의견을 내는 세대도 아파트 전체로 보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온도를 올려달라는 것이냐 내려달라는 것이냐,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되묻는 기관실 측에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주민 목소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결국 사태는 가장 안 좋은 쪽, 난방 온도를 올리는 쪽으로 흘러가 버렸다. 가장 쉽고 당장은 조금 효과가 있지만 결국은 가장 피해가 큰 길로 말이다.

고지서 1.jpg

가장 화가 나는 건 물가가 오른 현실이 아니다. 힘든 상황에서 그걸 더 힘들게 만드는 모습이다. 물자가 부족한데도 낭비가 일어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기와 난방비까지 올라 힘든 환경이니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려 노력해야 하는데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느라 방법을 찾지를 못한다. 행여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이 있을까 말을 하지 않고,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줄인다. 그러는 사이 관리하는 곳에서는 자기 돈이 아니니 지출을 줄이려 크게 애쓰지 않는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안타깝다. 우리의 이기심이 결국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로 되돌아오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무섭게 오르는 물가보다 더 힘든 건 이런 우리들의 이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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