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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치질 경험기 4

후기를 보지 말자

by 크림동동


‘그래, 이왕 마음먹었을 때 해치워 버리자!.’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계시로 여기기로 했다. 이참에 엉덩이 문제를 뿌리 뽑기로 했다. 치질 수술이 아프다고 소문나긴 했지만, 까짓 거 해 버리자고 결심했다. 병원에 가서 씩씩하게 수술을 받겠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온화한 얼굴로 수술 날짜를 언제쯤으로 잡기를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미리 생각해 둔 바와 같이 한 달 정도 뒤의 날짜를 말했다. 개인적인 일정을 고려해서 정한 날짜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실수인 줄을.

나의 첫 번째 실수는 수술을 결심한 날과 수술일 사이의 간격을 너무 두었다는 거였다. 그것도 의사나 병원의 스케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한 거였다.


미리 말하자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이유는 지금 곧 말하겠지만 두 번째 실수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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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술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치질 수술 후기를 전혀 읽지 않았다. 치질 수술이 아프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굳이 어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치질 이야기는 공공연히 대화할 소재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백지상태에서 수술을 받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수술 날짜를 정하고 나서 어느 날 문득 충동적으로 후기를 읽게 되었다. 이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내가 스스로 지옥문을 연 셈이었다. 더 웃긴 것은 나 스스로도 이제 와서 후기를 읽으면 후회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읽었다는 점이다.


가끔 보면 사람이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뻔히 알면서도 후회할 짓을 한다. 아니, 어쩌면 ‘호기심’이란 것이 그 정도로 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성’의 힘을 마비시킬 정도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내 치질 수술 경험기를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치질 수술과 관련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수술 후의 진짜 통증이 아니라 수술 전의 공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아픔의 힘은 대단했다. 나중에는 치질 수술로 머리가 꽉 차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수술 전날까지 고민했다.


‘지금 전화해서 수술을 취소한다고 할까? 아예 노쇼를 해 버릴까?’


입원 전날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입원 준비물이 적힌 병원 안내문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런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술 취소나 날짜 변동은 전날까지 전화하셔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병원에서도 미리 그와 관련된 사항을 고지한 거였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란 인간에 대한 자각이 들었다. 나는 어차피 수술을 취소한다고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튀는’ 행동을 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수술을 받게 될 거라면 계속 후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후기를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아주 늦은 결심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라도 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서 수술 당일, 나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히 담담한 상태로 병원으로 향했다.


(쓸데없는 정보이긴 하지만 치질 수술에 대해 좌욕기에 대한 광고 없이 정보를 얻고 싶다면 ‘디시인사이드’의 ‘치질 마이너 갤러리’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생생한 후기도 잔뜩 보게 될 거라는 경고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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