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폰 유저가 되다.

by 이름없음



역행(逆行)

명사

1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2일정한 방향, 순서, 체계 따위를 바꾸어 행함.

3뒷걸음질을 침.

[출처:네이버 어학사전]



휴대전화를 바꿨다.


참고로, 나에게는 2대의 핸드폰이 있었다.

메인으로는 아직 할부가 끝나지 않은 아이폰 14 플러스가 있고

서브폰으로 아이폰 X를 사용했다.

서브폰까지 사용한다고 하면 공사가 다망한 인간, 혹은

잘 나가는 사업가로 여길 테지만

사실은 단순히 귀찮음을 이유로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불필요하게 두 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상실과 회의감이 짙어지면서 주변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가장 거슬린 것은 휴대전화였다.

그래서 새로 바꾼 기기는 의외로 폴더폰이다.

카카오톡 외에는 설치할 수 있는 앱도 없고,

기존에 쓰던 스마트폰의 기능은 거의 사라진 단출한 기계.


터치 화면에 익숙해진 탓에 물리적 버튼을 꾹꾹 눌러야 하는 자판이 낯설기만 하다.

예전처럼 빠르게 입력하는 건 불가능하다.

손글씨를 쓰듯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눌러 음절을 만들고,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메시지 한 통을 보내려면 정교한 노력이 필요하다.


폴더폰 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매일 새로운 불편함을 발견한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불편함’이라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낯 섬, 어색함. 아마도 이런 단어가 적절하겠지)

사실 아날로그 세대를 거쳐 자라온 내게 이런 경험이 전혀 낯선 것은 아니다.


하루에 하나씩 발견하는 사소한 제약들은 차차 공유하기로 하고.

바꾸길 잘했다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에 묶여 있던 시간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운전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거나,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을 때는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충분히 되짚어본다거나,

멍하니 있는 동안 스스로에게서 흘러나오는 생각들이 의외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하루 한 권씩 책을 읽고 있다는 점은 스스로도 놀라운 변화다.


기계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앞으로도 이 느린 호흡 속에서 어떤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해 보며.




작가의 이전글제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