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의 스침

사소한 연으로 맺어진 영원의 정

by 오후로망

영화를 하나 봤다. 학교 국어시간에 읽은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여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도령이 우연히 문틈으로 처녀를 보았고 그렇게 계속 처녀를 엿보았다고 한다. 이를 눈치챈 처녀는 문을 열고 나가 숨어있던 도령의 손을 끌고 부모 앞에 데려다 놓고 도령과 가약을 맺겠다고 했단다.

여기까지는 도입부고 이후 처녀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천지신명이시여, 제 말이 거짓이면 이 칼이 저를 해하게 하시고 제 억울함을 아시면 칼이 저를 피해 가게 하소서!" 하고 단도를 하늘에 던졌는데 처녀를 피해서 땅에 박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건 도입이었다. 처녀는 도령의 무엇을 보고 부모를 불러 도령과 백년가약을 맺게 해달라고 한 걸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요즘에도 쓰이지만 단 한 번의 해프닝이 사랑이 되고 정이 되고 목숨을 건 맹세가 되는 것은 조선에서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손끝 한 번 스친 정으로 목숨을 던질 만큼 연모하게 되는 것, 그런 연정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치안상태는 아주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목숨을 버려야 할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아주 작은 약속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는 건 낭만적인 삶의 자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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