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웃어라, 이미 이루리라.

by 오후로망

어린 시절, 어른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직전에 나에게 '김치'라고 말 해보라고 했다. 발음이 '이'로 끝나니까 이를 보이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편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게 어느새 '치즈'가 되었다. 군용차에 탄 미군에게 '기브 미 쪼꼬렛' 하던 촌스러운 한국 사람들이 먹는 '김치'보다는 월드 넘버 원 초강대국 미국 사람들이 빵에 끼워먹는 '치즈'가 더 세련되게 들려서 였을까.

어느 날 단체 사진을 찍는데 직전에 한 녀석이 느닷없는 소릴 했다. "얘들아, '치즈'라고 하면 입꼬리가 내려간대. 그래서 '치즈' 대신 '위스키~'라고 해야 자연스럽대. 자, 다들, 위스키~"

그런 정보를 알게 돼서 관철하고 싶었으면 미리 말해서 다들 "오~그래?" 정도의 반응이어야 선창했을 때 따라 하는 거지, 뜬금없이 한 줄 설명을 하면서 '위스키~'를 하라고? 위스키라니... 느끼하고 거북했다. 그때 찍은 사진의 내 입꼬리는 아래로 꺼지고 있다.

나중에 책에서 읽었는데 미소를 지으면 인간의 뇌는 기분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웃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도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성공한 놈이 자주 웃는 게 아니라 자주 웃는 놈이 성공 중이었다.

세상살이라는 게 '김치''치즈'가 맞다는 판단이 들어도 '위스키' 하는 놈이 인생 아는 놈이고 제대로 사는 건데 난 그게 참 어렵다. 친구 중에 마당발이 하나 있는 데 이 녀석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모나질 않았다. 그래, 저놈처럼 살아야지, 둥글둥글하게 흐리멍덩하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늘 얼마 못 간다.

최근에 드라마를 하나 보다가 '깍두기'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꾸만 부담 없이 해보게 된다. 지금도 하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모두 웃어보자.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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