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

지나가는 모든 것, 그 가운데 서있는 나.

by 오후로망

한동안 90년대를 끌어다 푸지게 놀아제꼈습니다. 저는 관련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전에 나온 것으로 한정해서 '구슬동자'라는 완구 시리즈를 수집했는데, 중간에 컬렉션이 완전히 엎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다시 조금씩 모아서 컬렉션을 결국 완성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 취미에 많은 돈을 할애할 수 없는 제가 중간에 한 번 무화 됐는데도 다시 시작해서 컬렉션이 완성에 이를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이제 오래된 문구점에서 먼지를 쓰고 숨어있던 구슬동자도 살 사람은 다 사고 버려질 것은 다 버려진 모양입니다. 중고 완구 전문 사이트는 아예 폐점해 버렸고 지금 중고 사이트에 올라오는 물건들은 가격이 하도 올라서 구입할 엄두가 안 나게 됐어요. 살짝이라도 특별하다 싶은 품종이나 기체는 정말 씨가 말랐습니다. 쇼핑 사이트에 코빼기도 안 비칩니다.


제가 사는 동네도 된다 된다 하면서도 여태 안되더니 곧 진짜 다 부수고 재건축이 될 거라네요. 먼저 재건축이 결정돼서 이제는 다 마무리된 옆 동네에 가보니 거대한 아파트가 산성 같은 위용을 자랑하며 저를 내려다보더군요. 아파트 입구에 경비원 아저씨도 저를 거만한 눈으로 힐끗힐끗 하고요. 안 들어가요, 안 들어 가, 아저씨. 들어가 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눈 좀 착하게 뜹시다.


유행은 정신없이 지나고 시대는 무섭게 바뀌는데 저만 거북이걸음을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급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요즘 팝락을 자주 듣습니다. 팝락이 유행하던 학창 시절에 홀로 메탈을 들으면서 대중성에 타협한 록의 배다른 형제라며 팝락을 욕하고 경멸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어쨌든 저는 관뚜껑 닫힐 때도 락을 들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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