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책에 파묻혀 살았던 한 해였답니다
26년이 시작한 지 무려 2주가 지났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까 뭐부터 써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글을 쓰겠다고 해 놓고, 글 쓰는 사람이라고 공표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제일 두려운 게 글쓰기>
돌아보면 작년에도 글 쓴다고 말해놓고서는 고작 한 달에 한번 쓰는 게 다였다.
핑계를 대자면, 대신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3주에 한 번씩 20권 정도의 책을 빌리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읽었던 책들의 주제를 보면 아래와 같다.
1. 진정한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삼십여 년 넘게 살았지만 진정한 '나'를 정의 내리는 건 여전히 어렵다.
제도권 교육에서 알려준 적도 없고,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다.
최근 갑작스럽게 소속이 사라졌다.
작년을 기점으로 하던 일을 온전히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을 예상했음에도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속감이 없어지니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무엇으로 소개해야 하나?"
사람들과 인사할 때 내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닌,
어디에 소속된 '나'라는 게 익숙해진 지 꽤 오래되었다.
소속이 사라지자 급격하게 외로움이 밀려왔다.
두려운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불안감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뜯어보았다.
외로움과 혼자 있음은 같은 듯 다른 것인데,
고독이라는 단어는 '온전한 하나'로 원래 결핍이 아닌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고독은 '온전한' 의미였는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외로움이 나타나며 부정적인 단어로 변화했다.
책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었다.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조직에 소속되고자 시도하는 게 바보 같은 일이란다.
누군가가 만들어 놨던 길을 따라간다면 '내 길'이 맞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내가 나아갈 길은 새롭게 걷는 한 발 한 발로 이뤄진다는 것인데.
진정한 소속감은 불완전한 진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때만 생긴다
- 브레네 브라운
2. 지난 실패를 어떻게 기록하면 삶에 의미가 있을까.
지난 2년은 성과 없는 시간이었다.
시도했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어서 무기력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를 증명하고 싶었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간의 연속.
무의식 중에 모든 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발전, 배움에 대한 욕망은 너무 많았던 거다.
실패를 실험으로 포장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속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년 동안의 도전과 멈춤 그 과정 안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1) 매일매일의 작은 감사함 기록하기
2) 내가 계속 도전하는 이유를 떠올리기
3) 지금 하는 일과 연결 지어 보기
3. 인풋보다는 아웃풋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아웃풋을 위한 일종의 발악이다.
작년에 더 많은 편집자, 에디터들과의 연결을 통해 나의 글을 다양한 매체에 알리고 싶었다.
내가 머뭇거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나는 고집이 매우 센 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다.'는 똥고집이 있다.
회사에 다시 돌아가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게 그 이유인데.
내 글을 읽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청룡영화제에서 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찬혁을 떠올려보자.
처음 그는 '슈퍼스타K'에서 악동뮤지션으로 등장했다.
당시에도 독창적이고 대단한 뮤지션 남매이긴 했지만, 그들은 대중의 욕망을 읽었다.
10년 정도를 대중들에게 맞춘 작사, 작곡을 하다가
딱 11년을 기점으로 이찬혁은 본인의 독특한 서사를 드러내게 된다.
여전히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하는 건 나를 속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은 결국 아무에게도 닿지 않더라.
글을 나를 드러내기 위한 행위와 마찬가지니까.
즉, 아웃풋의 방향은 내가 아닌 타인이어야 한다.
내 자랑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쓸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