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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Aug 08. 2021

책의 배신

강원도에서 과테말라로

채리에게.


오늘은 8월 8일, 일요일이야. 네 예상처럼 8월을 과거형으로 듣지 않게 하려고 오늘은 국제 특급 우편을 붙여본다. 이번 주말은 남편과 무려 열흘만에 둘이서 보내는 날이야. 7월 한 달간 빠짐없이 약속이 있고, 집에 놀러 오는 손님들로 정신없이 보냈고 8월이 되면서 다시금 나의 생활을 찾으려고 해. 마침 노트북도 수리를 맡긴 바람에 한 달을 내리 놀아버린 셈이라 밀린 대본 작업,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보려고 해.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운동! 이야.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약 8개월간 운동을 못해서 이번 달부터는 다시 식단과 운동을 하면서 체지방을 조금 감소시켜보려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운동을 안 해서 생기는 마음의 죄책감이란 돌덩이를 치워내는 작업이라고 해두자. 우리 집의 배경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곁들이자면, 작은 차도에 옆으로 나있는 작은 샛길 (굉장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면 3가구의 주택이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그 세 가구 중 하나의 집인데 편의점은 당연히 없기로서니와 슈퍼, 혹은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한 산책로 따위도 없는 곳이야. 산책을 해야겠다 하고 걸어 나가면 군인 차량이나 고속버스들이 지나다니는 차로를 (인도가 없어) 걸어야 해. 목숨 정돈 걸어줘야 산책이다. 이런 마음으로. 그래서 산책은 고사하고 생필품도 사려면 차를 무조건 타고 나가야 하는, 그런 외진 곳이야. 처음에 시골에 내려올 생각을 할 때는 남편과 차를 타고 매일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헬스장+요가원을 다니기로 약속했는데 웬걸, 너무 귀찮네? 그래서 집에 있는 작은 창고(컨테이너 하우스라고 하나?)에 헬스 기구를 사두었어. 나는 근력운동은 그리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헬스를 하는 동안에는 난 춤을 추기로 했고, 이제 겨우 이틀째야.(ㅋㅋㅋㅋㅋ) 하루에 30분이라도 땀을 내면서 춤을 추니까 몸에 활기가 돌고, 식욕이 돋고, 잠이 쏟아지고.... 오랜만에 하는 운동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느끼는 이틀이었다. 여름 동안 지속한다면 가을에는 조금 핼쑥해지려나. ㅎㅎ


오늘 네가 백신을 맞은 영상을 보고 곧바로 답장을 쓰고 있어. 주변 친구들 특히나 아이를 기르는 집의 부모들은 백신을 거의 다 맞았고, 우리 엄마, 시어머니도 이번 주에 모두 백신을 맞아. 한국에는 얀센이라는 백신을 미국에서 나눔을 해줘서  예비군들이 맞았는데 남편도 신청해서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거부해서 신청하지 않았어.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백신을 안 맞을 수 있다면 안 맞고 싶은 사람이거든. 참고로 나는 건강 염려증도 없고, 어차피 사람의 목숨은 운명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운명론자이며, 정부를 불신하는 반체제 부류도 아니야. 그런데 왜 백신을 맞지 않으려 하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부작용의 두려움 때문이야. 사람의 목숨은 운명으로 결정지어지겠지만, 내가 천식이나 기관지 쪽이 많이 안 좋은 데다 요즘 30대 후반이 되면서 혈액질환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거든. 아무튼 여러모로 백신의 부작용에 해당되는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백신을 맞고 어떻게 잘못된다고 해도 나라에서 보상도 못 받고, 내가 선택한 책임을 고스란히 내가 져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백신을 맞고 싶지 않더라고. 나는 어쩜 국가를 불신하고,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쨋거나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산골에 처박혀 사는 사람이니 가끔 외출할 때에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스스로 청결하도록 노력해보려고. 말이 길어졌는데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은, 안 아팠니? ㅋㅋㅋㅋㅋ


수년간 이용해온 yes24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상실에 빠져 한동안 신간을 읽지 못했어. 얼마 전에 한국에선 택배사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큰 택배대란이 일어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이 기간에 책을 주문했지 뭐야. 강원도는 파업 해당 지역이 아니었는데도 내 책은 오지 않았어. 나는 택배가 늦게 오거나 하는 것으로 클레임을 걸지 않는 무난한 타입의 고객이라 일주일이 지난 후에 게시글을 남겼지. (보통 yes24에선 하루 만에 배송 오는 거 알지?) 택배사 파업으로 인해 늦어진다고 기다리라고 답을 하길래 기다렸지, 3주를 기다렸어. 안 오더라. 과테말라에 사는 네가 한국 책을 부탁하고 기다리는 맘이 이런 걸까 잠시 생각했어. 그리곤 또 글을 남겼어. 언제 오냐고. 택배사 파업인 건 알겠는데 다른 택배는 다 오는데 왜 책만 안 오냐고... 환불을 해달라고 했지. 죄송하대. 곧 올 거래 기다리래. 그러더니 4주가 가까워 올 무렵, 배송 완료가 뜨더라? 책은 오질 않았는데 말이야. 책이 안 왔다고 했어. 그리고 환불 그냥 제발 해달라고... 부탁해서 환불받았어. 것도 두 달 넘어서. 그래서 지금 두 달째 책을 못 샀어. 홧김에 교보문고에서 사버릴까! 하다가, 나는 옛정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yes24에서 주문을 하려고 해. 사실 포인트가 많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말인데 네가 읽은 책 중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줄래? 이번에 주문하는 책은 꼭 빨리 도착하길 바래야지. 아니, 그전에 네 답장이 와야 주문할 수 있는 거니까. 특급 우편 부탁해도 될까?ㅎㅎㅎ


그럼 다음 편지에는 여름을 마무리하는 이야기와 부지런히 춤을 추고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답장 기다릴게 :)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강원도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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