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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Oct 12. 2021

머물고 싶은 집, 떠날 수 있는 집 <시골집 구하기>

스무 번째 이사

우리의 첫 집을 만나던 날

우리의 신혼집에 놀러 온 사람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 "이런 집을, 어떻게 구했어?"라고. 일 년 전, 우린 예상보다 빨리 지금 이 집을 만났다. 같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처음으로 한 일은 유명하다는 시골집 구하기 네이버 카페와 밴드에 가입하고 귀농귀촌 지원센터*같은 귀촌 관련 사이트를 뒤지는 것, 온라인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료를 찾는 것이었다. 직접 전국 곳곳을 누비며 마음에 드는 동네를 찾는 일이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귀촌 체험을 하는 마을이나, 너무 붐비지 않되 문명에서 너무 소외되지 않은 지역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월 10만 원이면 마을에서 비어있는 시골집을 빌려주고 귀촌, 귀농에 도움 되는 교육을 무료로 진행해주며 심지어 정착지원금까지 주는 지역이 많았다. 도심으로만 몰리는 인구밀도를 해결하고자 각 지자체에서 만든 방안이니 마음의 준비만 된다면, 다 버리고 떠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걸 다 누릴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교통편이 편하면 편할수록 정책과 혜택은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의 의지만큼은 서울에서 최대한 멀리멀리 떨어진 땅끝마을 해남 정도로 떠날 수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한 결과 '강원도 인제'로 합의를 했다. 여태껏 살 곳을 정하는 방식은 늘 그렇듯 심플했다. 연고지가 있어서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추천을 해줬거나 하는 안전한 이유도 아니었다. 지도를 훑어보다 '이 정도가 좋겠어!' 손가락으로 탁! 찍어버린 것. 1-2주에 한 번씩은 서울을 와야 되니까 2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로 정하고 난 뒤 딱 맞아떨어진 곳이 인제였다. 인제에서 속초는 한 시간, 서울-양양 고속도로 덕분에 차가 안 막히는 시간이라면 강남까지는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였다. 양평이나 가평도 좋지만 서울과 너무 가까운 탓에 마음먹고 귀촌하는 기분이 안 날 것 같아서 낯선 인제가 제격이었다. 살면서 인제에 여행을 제대로 가본 적도, 인제는 뭐가 유명하다더라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지명이었으니까 확 끌렸다. 나라는 사람은 낯선 곳에 덩그러니 놓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이번엔 혼자도 아니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역을 결정했으니 이제 집을 정해야 할 차례다. 처음 지도를 찍어 간 곳은 인제 기린면이었다. 내린천이 곁에 흐르고 시외버스 터미널이 곁에 있었다. 양양에 서퍼들이 많다는 힙한 해변가 까지는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라 위치상으로는 최고였다. 매일 양양 바다를 출퇴근해도 좋겠다 생각했다. 기린면에 도착해 네이버 지도로 '부동산'을 검색하고 지도에 표시된 부동산을 모두 돌아다녔다. 첫 번째 부동산에서는 1개의 집을 보여줬다. 전월세는 빌라, 아파트가 주로 매물로 나오고 마당이 있는 주택은 전월세가 없다고 하면서 8천만 원에 매매로 나온 집을 하나 보러 가겠냐고 했다. 우리는 부동산 업자에게 주소를 받아 들고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 한 집 앞에 도착했다. 집은 20평 정도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단층 건물인데 집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온 마음을 다 뺏겼다. 파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멀리로 설악산 산맥이, 아래로는 내린천이 흐르고 눈에 거슬리는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온통 자연의 색으로만 칠해진 그런 집이었다. 집 앞으로는 파쇄석을 깔아 두어 잡초 신경 쓸 필요 없도록 가꾸어 놓았고 한 켠에는 땅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콸콸 나오는 수돗가, 그리고 수돗가 옆으로 된장 고추장을 담아놓는 장독대가 나란히 있었다. 통장에 8천만 원이 있었다면 나 이거 살게요. 하고 충동구매를 해버릴 만큼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첫 번째 집에서 마음을 뺏기다니...(이래서 충동구매는 위험한 것) 서울을 떠날 마음을 먹고 보니, 도심만 아니라면 그 어떤 집이라도 다 좋다고 할 기세였다. 우리의 첫 집이기도 하지만, 유랑하며 살기로 한 부부의 첫 집이기도 해서 매매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를 정착시켜줄 집이 필요했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다음 부동산을 들렀다. 집이 없다고 했다. 우리 예산을 듣더니 그런 집이 있다고 해도 비싸다고 했다. 이것이 시골 텃세인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할 수 없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세 번째, 네 번째로 찾아간 부동산은 줄줄이 문이 닫혀 있었고 전화를 걸어 매물을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주택 전월세는 없다'였다. 세상 모든 젊은 사람들은 다 도시로, 서울로 떠나버리니 지방에는 노령화가 심각하고 일 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막상 지방에선 젊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집은 많은데 왜 내가 살 집은 없고 세도 안 주려고 하는 거지 이해가 안 되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느낀 감정을 인제 산속에서도 느껴야 한다니. 괜히 처참한 기분이 들어 우리 둘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없이 괜히 창밖만 바라봤다. 그 이유는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었다. 시골집은 보통 노인들이 사는데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집은 자식들에게 상속되어 빈집이 된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살던 빈 집을 허물어 새로운 집을 지어 살거나, 혹은 방치한다. 시골집은 월세나 전세로 받아봐야 돈도 안되고 골치만 아프기 때문에 땅값이 오를 때까지 방치를 할 뿐, 세를 주지는 않는다. 집을 찾으러 강원도로 향한 첫 번째 날, 그렇게 기대와 흥분 그리고 좌절을 동시에 맛봤다. 그래도 한 번만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우리는 양양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국도를 탔다. 1시간 반이면 돌아가는 길을 3시간에 걸려 가기로 한 것이다. 천천히 가자. 그렇게 살고 싶어서 우리가 시골에 내려오고 싶은 거잖아. 그런 얘길 하면서 지나가는데 예쁜 마을이 보인다.

"저기 저 마을 너무 예쁘다, 다음 주엔 여기 와볼까?"


그렇게 다음 주 주말, 우리는 인제 남면으로 향했다. 지난주처럼 처참하게 실패하고 싶지 않아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귀촌 카페를 둘러보니 시골집은 역시 인맥이라고 한다. 마을 이장님이나, 반장을 찾아가 부탁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부동산을 둘러본 다음, 마을 어른들을 만나기로 했다. 마을 회관에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들어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 마을에 남는 집이 있는지 수소문해 볼 생각이었다. 그것마저 안되면 면사무소에 빈집 현황을 열람하고 받아본 리스트에서 괜찮은 컨디션의 집을 추린 다음, 집주인을 만나 협의를 하겠노라 비장한 마음을 먹었다. 게다가 헛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서 동홍천 IC 근처에 나온 주택 월세 몇 가구 정보를 들고 오후에 들르겠노라 약속까지 하고 출발했다.

제일 먼저 부동산을 찾았다. 남면 신남리에는 부동산이 2군데 있었는데 그중에  군데에 먼저 들어갔다. 웬걸 부동산에 컴퓨터도 없고,  흔한 책상도 하나 없다. 커다란 가죽소파 앞에 놓인 나무 테이블,  위로 잔뜩 쌓인 담배꽁초. 아저씨  명이 마주 보며 담배를 뻑뻑 펴대고 있다. 그중  사람은 손님이 왔으니 가볼게, 하더니  나가버렸고 머리가 백발이었던 아저씨는 아가씨가 왔으니 담배는 꺼야겠다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백발을  아저씨의 답은 역시였다. "그런 집은 없어" 우리가 실망을 하고 나가려는 찰나에 2 초반대 매매로 나온 집이 하나 있기는 한데, 한번 구경이라도 할는지 묻길래 좋다고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와서 집도 한채  보고 가는  너무 억울하니까. 그렇게 아저씨의 차를 타고 10 정도를 산길을 따라 달렸다. 점점 인적이 없고 차도 없었다. 커브길은 몹시도 가팔랐고 혼자도 아닌데 나는 우릴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한  .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왼쪽으로 소양강이 넓게 펼쳐진 산속의 집이었다. 마당에 잡초 풀은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자라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낯설지가 않았다. 강가를 바라볼  있는 정자도 있었다. 저기서 비가 오는 날엔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먹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환상이었다. 거실에 있는  창을 넘어  멋진 풍경이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창밖 경치에 마음을 모두 뺏겼다.

남편에게 말했다.

" 여기가 너무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


집을 둘러보고 비장한 각오를 했던 계획을 실천했다. 면사무소에 들러 빈집 현황 리스트를 받아 들고, 마을 회관 앞으로 갔다. 코로나 여파로 마을 회관 운영은 중단되어 있었다. 빈집 리스트를 들어 보이며 남편이 말한다. 그 어떤 집을 봐도 마음에 안 들어올 것 같으니 저기서 살자고. 나의 흥분한 눈빛에 남편도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우린 인제 부평리 마을 회관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말했다.

"잘 살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는데, 꾹 참았다.

그렇게 우리의 첫 집이 정해졌다.





귀농귀촌 지원센터 - 각 지자체별 귀농/귀촌 관련 정책이나 혜택 정보를 제공한다.

https://www.returnfarm.com:444/cmn/main/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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