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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Jun 18. 2024

비거니즘과 아돌프 히틀러의 채식주의

“인류의 타락은 채식을 포기하면서 시작됐다. 인류는 그들이 먹은 동물의 피로 오염되고 썩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음악가 바그너가 쓴 ‘영웅주의와 기독교’의 한 대목이다. 19세기 낭만파 음악가인 바그너의 멜로디는 감미로우면서도 게르만 민족의 고대신화를 일깨우는 웅장함이 있었다.

그의 음악에는 게르만 민족주의도 내재되어 있었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1889~1945년)는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다. 또 그의 사상에 공감했다. 게르만 민족주의와 채식주의가 그것이다. 아리안 우월주의에 빠진 독재자 히틀러는 세계를 제2차 대전의 수렁에 밀어 넣었고,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광기 어린 독재자, 포악함의 극치였던 그가 의외의 주장을 했다. “육식 탓에 사람의 인성이 포악해진다. 미래의 먹거리는 채식이다.” 육식을 멀리한 그는 근현대사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든다. 애견가인 히틀러가 만든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생체실험 금지, 동물 꼬리 자르기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동물을 사랑한 독재자의 식탁은 고기가 빠진 식재료로 구성됐다. 아스파라거스, 감자, 파스타, 피망, 쌀, 고추, 샐러드 등의 식재료로 음식이 차려졌다. 중년 이후에는 특히 케이크, 초콜릿, 빵, 과자 등 단 음식을 즐겼다. 그의 식단은 해외에서도 화제였다. 뉴욕타임스의 1937년 기사에는 히틀러의 식성이 실려 있다. “히틀러는 고기를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의 식탁에는 물, 수프, 채소, 달걀이 전부다.” 그 무렵의 독일 언론은 히틀러의 동물 사랑과 생명존중, 채식주의를 부각하곤 했다.

독재자의 비서였던 트라우들융은 회고록에서 “히틀러는 감자 요리 외에는 별다른 것을 찾지 않은 채식주의자”라며 “주 음식보다는 보조 음식을 즐겼다”라고 설명했다. 트라우들융은 고기에 얽힌 일화도 책에서 소개했다. 요리사 크뢰멜이 몰래 고기 국물을 내고, 지방을 섞기도 했는데, 히틀러가 대부분 알아챘고, 복통을 앓았다는 것이다. 또 히틀러는 요리사 크뢰멜에게 감자를 으깬 요리와 고기 없는 맑은 국물을 주문했음도 밝혔다.

​2차 대전 중에 히틀러의 식사 비서 중 한 명이 마르고트 뵐크였다. 그녀의 임무는 히틀러의 음식을 먼저 먹는 것이었다. 그녀가 시식 후 독이 없음을 확인한 후 히틀러는 식사했다. 2년 6개월 동안 근무한 그녀는 “히틀러가 고기를 먹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히틀러의 신체에서도 고기를 먹지 않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필리페 샤를리에 등 프랑스 법의학 연구진이 히틀러의 턱뼈와 치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히틀러의 남은 5개의 치아에서 전혀 고기 연관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1945년 자살한 히틀러의 시신은 소련군이 불태웠고, 남은 유골이 러시아연방보안국(FSB)에 보관돼 있다.

주변 인물의 증언과 치아 흔적, 언론 보도 등에 의하면 히틀러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임이 분명하다. 젊은 시절에 미식가에다 고기도 섭취했던 히틀러는 20대부터 금주를 하고, 엄격한 식습관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치의 전신인 독일 노동자당 시절에는 닭과 비둘기 요리를 먹고, 와인을 마신 증언도 있다. 또 정치적 제스처 차원이나 소화 촉진을 위해 맥주를 조금씩 마시기도 했다. 히틀러는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이에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의사의 조언대로 생선과 고기를 섭취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본격적인 육류 중단을 한 것은 1931년 조카 겔리 라우발의 자살 이후라는 설이 있다. 히틀러는 육식 때 죽은 조카의 이미지가 떠올라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진다. 육식이 인체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한 그는 식물성 식단에 집착했고, 금연 캠페인을 하고, 술을 멀리했다.

먹거리에서의 히틀러에게는 청교도와 같은 금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동물을 이용한 식품이나 제품을 근본적으로 배척하는 완전한 비건(vegan)은 아니다. 고기는 먹지 않았지만 요리에 동물성 식품인 달걀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믿었던 육식은 포악한 성품, 채식은 영적으로 맑음을 이끈다는 일반화도 오류가 있다. 무엇보다 채식주의자인 히틀러 자신이 악의 축임이 이를 말하고 있다. 또한 세계 도처에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많은 지혜로운 사람이 육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히틀러의 주장처럼 채식만 하면 인체는 어떻게 될까. 육류 섭취가 일반화된 현대는 영양 과잉 시대다. 비만인구가 늘고, 대장암등 육류의 과다 섭취로 인한 문제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의사들도 채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극단적인 채식은 건강에 악영향 가능성이 높다. 채식만으로는 사람에게 하루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다 섭취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친 육식이나 과한 채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균형 잡힌 식단은 동식물성 식재료가 적절하게 더해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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