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을 막론하고 특정한 나이의 여자 사람이 사회적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Name tag 없이 ‘연애'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떤 현상을 “결코 쉽지 않다"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 생은 틀렸을지도 모른다"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필요가 있겠냐고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냉정해지고 싶었다. 설사 내 선에서 냉정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이미 겪고 있는 시선들은 적어도 그보다 덜 냉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호기심이 나의 “전례 있는” 인생의 전부였지만, 그 전부가 이미 이 세상에서는 허상의 영역에 있었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셈이라고 치기엔 난 너무 지쳐버렸다. 주변에 30대를 나란히 하는 사람들은 연애 시장에서 나의 객관적 ‘좌표'에 실존적인 관심이 없다. 다들 연애 시장의 불황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사람 하나는 진작에 마련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토록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갔다.
햇빛이 뜨겁다. 뜨겁다 못해 내 혈관의 피를 강제로 끓이는 것 같다. 피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 싶은 현상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때때로 어떤 불편한 “사실"이 내 24시간을 관통할 때면 잠시 동안 온몸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그 사실은 나를 피해가지도 않았고 나 또한 그 사실을 피해 갈 능력이 없었다. 심리학자 조던. B. 피터슨은 “여자가 30 대에 이르러 결혼하지도 않고 아이도 없다는 것은 슬픈 깨달음"이라고 했다. 그렇다. 어떤 깨달음은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고귀하게 다가가지만 그 앞의 수식어가 “슬픈" 이어야 할 때 우리는 두 손과 두 무릎으로 선 땅에 고스란히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묻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의 눈물은 이 뜨거운 2018년 7월의 햇빛만큼 뜨겁다.
사랑니가 아프냐 사랑, 니가 아프냐.
사랑니가 온 입 안에서 지진을 일으키며 날이 거듭할수록 모습을 드러내면, 주변인들은 뽑아라고 한 마디씩 한다. 뽑아서 나쁠 것도 없지만, 뽑는 그 일련의 과정은 이미 몸 안에 있는 것을 인위적으로 뽑아버린다는 사실 때문인지 도무지 “생" 정신으로는 납득할 수 없을 뿐이다. 내 입 안에 버젓이 드러난 사랑니는 의사의 무심한 마취 주사를 거쳐 가차 없이 잡혀서는 단숨에 뽑혀야 했다. 때마침 그 상대의 영혼까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무심하고, 가차 없이, 단숨에 헤어져야 했던 나는 사랑니가 빠진 후의 상실감에서 오래도록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와 그의 세상” 이 끝났다는데도 “타인들”의 세상은 아무 일이 없는 듯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난 그렇게 혼자됨을 이겨내야 했다. 난 그렇게 지독하게 고독해야 했다.
1년 전의 슬픔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나는 지속적으로 그 슬픔에 집착했다. 그 길이 내가 그 상대방을 잊지 않는 유일한 길인 것 같았다. 이미 문이 닫힌 세상, 그리고 사라진 어제로 향한 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어김없이 오는 내일을 맨 정신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어쩌면 경험하지 않아야 하는 경험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특히 그 경험에서 구해줄 주변인이 없다고 판단될 때, 그 사막 같은 고독은 나에게 바로 그 가장 가까이 있던 타인을 공격할 명분을 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타인은 이유를 말하지도 않으면서 매우 화를 내는 나를 “못된 인간"으로 치부하고 멀리할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 들어야 할 말은 따로 있는데, 내가 가장 필요한 말은 해 줄 여력이 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인들의 삶도 맨 정신으로 버티기 버겁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나에게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아픈 자에게는 그래도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괜찮고 싶은" 사람들은 많았으니까.
세상은 나에게 빚진 것이 없지만, 그리하여 내가 나를 탓하다 보면 나는 나를 이 땅에서 들어내야 했다. 그러기엔 나를 보고 살아온 몇 명의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몰래 겪고 있는 이 상실의 가혹함을 물려주는 겪이 될 것인데, 그를 감당하게 할 정도로 그들은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나의 상처를 좀 봐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이미 그 시절을 겪어 내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가까이 올 수 없었다. 그렇게 같은 극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곳을 보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것도 내 일시적이자 주관적인 잣대로 인해 부정될 수 없었다. 이 또한 무릎으로 서서 눈물로 참고 있을지라도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팩트였기 때문이다. 그 또한 반드시 지나가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가장 멀어져야 할까. 어떻게 같은 언어를 쓴다는 서로가 단 하나의 단어로도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어야 할까. 어쩌면 모든 만남의 의미는 만남 그 일련의 순간에 귀결되는 불가피한 부대낌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난 이상 만난 적 없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헤어짐을 견디는 것은 만났다는 사실을 상쇄하는 영원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쩌면 잘 헤어짐보다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만남과 헤어짐은 이성적으로 따지고자 하는 나의 고집보다 훨씬 순식간에 일어났다.
때로는 세상을 구경한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온 내가 원망스럽다. 지키지 못할 세상은 엿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깨닫는 것인가. 자신의 세상을 버린 적 없는 사람들의 삶은 1차원에 존재하는 듯 보였다. 나는 나의 존재를 벗어나 다른 존재이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한 사람이라서 난 나를 두고 여러 가지 차원에 존재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의 나는 결코 이 곳에서 상상할 수 있던 나로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씩 자신의 거처와 자신의 정체성의 기준을 해체해가며 나는 나를 하나의 모습으로만 보려는 사람들에게 적응하기가 힘들어졌다.
새로운 경험에 따르는 “아는 사람"이 곧 나의 정체성에 중력을 부여하는 유일한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때 “알던 사람"들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나는 증거 없는 존재로, 마치 병은 없는데 증상만 드러나는 환자와 다른 게 없었다. 며칠 째 심장이 불안정하다. 그러나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증상을 넘어서 내 진짜 아픔을 볼 수 있는 의사를 기대하기에 나는 너무 타인의 상상 이상의 삶을 개척해버렸다. 그러나 개척한 지도를 공유할 단 한 명도 이 지구에 드러나지 않는다면, 나의 그 세상은 말 그대로 나만 존재하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중심 단어로 삼고 있는 “섬”인 것이다. 게다가 그 섬 조차 세상의 지도에는 이미 없었다--나의 이른, 자발적인 죽음 조차 증명할 수 없는 나만의 파라다이스. 결국 극단적인 탈출에 대한 불가피한 상상에서 다시 살아내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내가 나의 “파라다이스"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그 파라다이스의 중심에는 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할리우드 영화나 어제 본 미니시리즈가 주입한 허상에 불과할 지라도 때때로 이미 내가 품은 환상이야말로 나를 앞으로도 존재시킬 불씨인 것이다. 때로는 그 환상에 대한 희망이 나를 숨 쉬게 했다. 그 마저 없는 하루는 1초도 나의 하루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사랑은 나에게 이미 아픈 존재이다. 누군가는 사랑의 연결보다 상실을 더 잘 견디도록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서른 하나가 된 지금, 어느 누구 하나도 곁에 둘 수 없어야 하는 나라는 존재는 “당신들의" 연애 시장에서만큼은 보이지 않는 영혼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곧 자신의 세상을 보는 눈의 깊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애는 상황이 안정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특권인지도 몰랐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의 저자 리처스 도킨스는 인간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생존을 나란히 하는 부수적인 것들이 인간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고 우리는 우리의 근본적인 역할을 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회 현상을 누리고, 경험하고, 표현하고,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랑 또한 특별할 것도, 그렇게까지 아플 이유도 없는 그야말로 자연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사랑을 모르는 자의 하소연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글로 자신의 상황을 표현할 능력이 있는 자가 마침 이토록 고독하기에 불가피하게 자신을 이러한 식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해두면 나는 내 고독을 충분히 변호한 것일까. 그러나 내가 있겠다는 세상의 논리와 구조는 그 이상은 관대해지지 않을 방식으로 나는 희미하게 “운명"의 존재를 느꼈다. 운명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전의 세대와 다른 양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존재보다 먼저 존재했던 공식의 등식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의 “슬픈 깨달음" 은 나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게다가 운명은 더 무거워져서는 가속도가 붙어 나를 꾸준하게 항복시키는 것 같았다. 약해진 내가 지금 끊임없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만 봐도 하릴없이 약해진 영혼이 비빌 언덕은 나의 병명도 모르는 사람들의 오진 뿐인 것 같았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방식으로 모든 것이 잘못되어서는 나는 불특정 타인의 손에 이 세상에서 저 우주로 반품될 것만 같았다. 난 아직 멀쩡하고, 꿈을 꿀 수 있고, 여전히 아름다운데 말이다. 그렇다. 나만이 나를 구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불가피하게 판 구덩이에서. 내 운명 속에 있는 내 운명을 구한다는 것.
서른 하나. 만 29세. 나는 이 글을 나를 위해 써야 했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나의 얼굴, 나의 역사,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가장 최악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글만으로 나를 그리고, 나를 상상하고, 읽어줄 상대방이 필요했다. 난 가끔씩 오로지 글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W.M. 루이스는 인생의 비극은 삶이 너무 빨리 끝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이 시작되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나의 인내와 기다림을 요구했다. 그래도 더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이 인생이고 사랑이 아닐까. 아직까지는 사랑니도 아프고 사랑, 니도 아픈 서른 하나 여자 사람이다.
2018.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