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Sorry 지

미. 안합니다

by Romantic Eagle

나이 어린 사람이

내 선임이라서 견딜 수 없는 것인지,

그 사람 자체를 견딜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상황의 애매한 구분이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이를 못 견디는 나를 견디기 힘든 것인지

구분하려니까 피곤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할 것도 없지만,

때로는 들어야 할 마을 들어야

그 상황의 불이 꺼지곤 한다.


혹은

서로를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도장을 찍어야

다소 그 공간이 숨 쉴 만 해 진다.


인간적으로 싫어서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인간일 뿐인

인간 "둘" 사이의

불편한 긴장이 생기면

그 공간은 모두에게 불편의 공간으로

인지된다.


무엇을 위한 자존심인지,

무엇을 위한 화남인지

따지려니 피곤하다.


그냥 좋게 끝내고

아무 일 없던 듯이

각자의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무언의 각서만이

둘 사이 긴장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는 했다.




나의 가장

쪼잔한 모습을 들키고도

나의 가장

못된 모습을 보이고도,

나의 가장

유치하게 삐져있는 모습을

보게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짜증을 내고

못되게 굴었는데도

다시 나를 보고 웃을 수가 있고

나는 너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인지.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내일에게

기회를 줘야

얻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직도 나는

나의 최악의 모습을 보고도

나에게 웃을 수 있는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내가 너라면

나는 너를 보고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들키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렇게 들킨 것을 목격한 당사자는

오히려 너그럽게 그를 이해하는

입장이 되고는 했다.


이미 타인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타인이 보호해주려는

그 어떤 나에 대한 공간은

나로 하여금

일말의

고마움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했다.


그 모든 것이

개인의 이익에 의한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Reality에

어느 정도 Rely 하지 않고는

Relationship이라는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다.


모두가 적당히

서로를

필요로 하도록

부족함을 느끼게 설계되었는지도 모른다.


설사 혼자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되어도

누군가를 잠시라도 곁에 두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무언가를 배우는 중이었다.


설사

배워야 할 필요가 없어도

나도 모르게 모으고 있는 정보가

결과적으로 나, 라는 사람의

“용도”를 결정할 테니까



아주 어린 어느 날

너의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전부였던 시절

의 모호하고 단단했던 사랑을

안고

아주 쪼잔해질 수 있는 나를

인내하며

너를 위한 다소 넓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가 아닌 나를 견디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