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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Jun 19. 2024

이번 연애에서 받을 상처 견적 내러 왔어요

'이별 후유증은 3년, 마실 술이 약 천 리터, 흘리실 눈물이 약...'


결국 싱글로 살 것을 처방 받았다.







알고 걸어들어가든,

모르고 걸어들어가든,




사실상



어떤 이끌림은

상처 받을 대비를 단단히

하고



마치



물고기가 미끼일 것임을

감지 하더라도

물어보듯,




믿어보게 된다.




물론,







그렇게 물어버리면

아가미를 이미

제대로 걸어버린

바늘 형태의 특수성으로 인해




내가 나에게 상처를 내지

않는 한

내가 내 신체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는 한




헤어나올 수 없는

길로

안내되기도 하기에.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이

환영으로 남아




제대로

무던한 일상을

놀리듯

염탐한다.





물론 그럴수록

더 단단해지는

현실의 견고함은





일차적으로는 재미없음을

보장하고,




이차적으로는

이 여름의 시원함을 보장하며,



삼차적으로는

들 생각이 없는 잠을

보장한다.





안다고 단정지을수록

내 단정을 벗어나는

삶의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한다.





불을 켜지 않으면

불이 저절로 켜질 생각이 없는

시공간을 살아내며,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나 잠시

생각을 해보지만,





내가 원한다는 것들이 모두

주입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하여 내 인생은

이미 존재하기나 했느냐에

도달하게 되면,




그냥



맛있는 거나 먹으러

나가는 본인을 발견한다.





그러다 어떻게든 드는 잠을

내일이 어떻게든 깨우게 되면

어떻게든 출근을 하고

어떻게든 퇴근을 하면

피곤함이 일단은

소정의 잠을 재우는 방식으로





이 삶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하를 바랄 수도 없음과 만난다.







연애를 해볼까,

시장에 나가서

과일 가격을 비교하듯





지금 이 나이에 또 연애

시장에 들어가

혈압만 높이는

뾰족 구두를 신고

칵테일을 홀짝이며,

편하게 먹을 수도 없는

어여쁜 접시 위의 음식을

 사이에 두고

어쩌면 정색으로 곧 변해버릴

상대의 시선과 향수와

웃음을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식사비는 내가 얼마든지

결제를 하겠지만,




그 미소를 다시

살 수 없을 수도 있음이

미리 허탈함을

감출 수 없을 뿐이다.






지나치게 다양한 하트 이모티콘을

쓸 데가 없으면

자기한테 보내는 톡에

전부다 눌러보곤 한다.




ㅋㅋㅋ




이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사실상

많은 에너지가 소비됨을 뜻하는 방식으로

이 사람과 헤어졌을 때

받을 일련의 충격이나

그런 마음의 상처에 대한 견적이

어느 정도 나와서

보험처럼 알고는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건

무시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보장할 즐거움이나 행복은

미리 결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한 번의 상처가

그 모든 것을 다 잿빛으로 만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서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글을 쓴 건지는 모르지만,





연애라는 개념을

원하지만,

그 실물이 보장하는 무게를

견딜 재간이 이제와서 없음을

잘 알기에




그래서 연애를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결정을 낼 수 없는 것도





삶의 일종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사실 연애를 하든 안 하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과

나를 슬프게 하는 순간은

어떻게든 기록되고 기억되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임을 감안하면





한명 더 아는 것으로

한번 더 아프다는 것이

큰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한사람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 주는

더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상처도

본인이 원해서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줄 생각이 없는 상처를

본인이 만들어서 받는 지도 모른다.




안주가 필요하면

음식을 먹으면 되지

왜 가슴 아픈 사건을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런 시간들을

사는 중이다.






혼자 아무도 보지 않는

프레임 안에서

원맨쇼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진화된

인간의 가장 본연의

장면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을 때

아무도 시선하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진실되고

가장 본질에 가까운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고

기억만 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알기에

기억을 잃어보는 작업을




이리저리




시도해본다.







Lost 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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