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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Jul 13. 2015

또 다시 돌아온 생일에 대하여

지독하게 외롭지만 희한하게 외롭지만은 않았던 그런 날.

일상수필집 01 _또 다시 돌아온 생일에 대하여

- 어찌된 게 눈 감았다 뜨면, 또 생일이지. 가끔은 생일이 돌아오는 게 살짝은 두렵기도 했다. 음, 정확히는 두렵다기 보단 딱히 달갑지 않았달까.


“생일은 가장 외로운 날이야!

인생의 동반자 같은 친구 B양이 말했다.    

  

“생일만 되면 마음이 허해.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진심 같지 않아. 서로가 의미 없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던지고 받는 것 같아. 그래서인가, 나는 한 해 중에 생일이 가장 외로워.”

B양은 매 년 그녀의 생일만 되면, 늘 이런 말을 나에게 털어 놓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하는 축하는 진심 같다고, 하루 종일 들은 그 수많은 축하의 말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지만, 너와 하는 대화는 손바닥 위에 남아 있다고, 그녀는 매년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늘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은 듯이, 너는 생각보다 소중한 사람이라면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이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 말들은 생각보다 진심이었으며, 생각만큼 진심이진 못했다. 사실 딱히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다만 어린 친구였고, 너도 딱히 나에게 어떠한 답을 원하는 어린 소녀는 아니었다. 서로가 다른 말을 하고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만은 완벽히 이해했다. 우리는 뭐, 그런 사이었다.     



외국에서 생일을 맞는 것은 벌써 올해로 세 번째다. 스물두 살, 스물네 살 그리고 스물다섯 살까지. 처음 생일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피렌체>였고, 두 번째 생일은 덴마크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이름 잊은 고속도로였다. 올해는 낭만의 나라 체코 <체스키>와 <프라하>에서 맞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너무나 부럽다! 정말 행복하겠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외국에서 생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온갖 오버를 떨며 '대박!'하며 똑같이 말할 테니까.     


그런데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생각보다 외국에서 맞는 생일은 그닥 좋지만은 않은 일이다. 배부른 소리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외로움은 내가 어디에 있던 그 환경에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에서 생일을 맞던 한국에서 생일을 맞던 나에겐 생일은 그닥 좋지만은 않은 날이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내 마음도 친구 B와 같은 마음이란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사실 항상 생일만 되면 이상한 마음에 하루 종일 마음이 내내 힘들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 버리니 오히려 생일이 조금 덜 힘겨워졌다.     



어렸을 적 생일을 돌이켜보면, 집에 친구들을 한가득 초대했다. 엄마는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형형색색 차려주셨고, 친구들은 파티 입장권 대신 포장이 예쁘게 된 선물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는데(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내 생일파티에 빨리 오고 싶어 뛰어오다가 넘어져서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왔었다. 그 남자애는 무릎이 까져 대일밴드에 피가 흥건하면서도, 손에 든 내 선물은 꼭 잡고 놓지 않았다고 한다. 하얀 레이스 포장 안에는 그 당시 인기 있던 예쁜 캐릭터 거울과 “거울보고 더 예뻐져!”란 귀여운 편지가 들어있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선머슴이 따로 없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 친구는 내 속의 여성성을 처음 알아봐준 이성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중고등 시절엔 딱히 기억에 남는 생일이 없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가 마냥 생각 없이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였는지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는 '그 언젠가' 이후 생일은 조금 외롭고 쓸쓸한 날이 돼버렸다. 이 외로움은 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시간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기념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매일을 기념일 같이 산다는 부모님의 로맨틱한 생각 때문이다.(물론 두 분 사이는 세상에 두 번 없을 정도로 좋으시다. 티브이 드라마에서 나올법하달까.) 그래서 뭔가 '나 생일이야.'라고 유난을 떨기가 아주 조금 머쓱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아직 어리잖아요!(뭐, 어리광이라 해두자.)


둘째, 그놈의 페이스북이 사람을 망치는 것 같다.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썩 친하지 않지만 어쩌다 친구가 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같이 조모임을 하면서, 뭐 어쩌다 친구가 겹치면서 등. 이상하게 꼭 그렇게 아는 사람들은 돈이 많고, 화려하며, 주위에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많고, 생일파티를 굉장히 크게 연 것처럼 보이며 마지막으론 생일 축하를 페이스북 페이지가 터질 정도로 받는다. 그래서 생일은 꼭 저래야만 할 것 같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만 할 것 같은 날이라는 이미지가 조금은 남은 것 같다.(뭐, 부러움도 섞인 거지!)


셋째, 새벽 12시가 넘어서 '까똑!' 울리는 수가 적어졌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면서도, 될 수 있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생일만큼은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와 사랑 그리고 관심을 받고 싶어 진다. 그리고 어렸을 때 주고받던 생일선물이 유난히 그리워진다.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생략하겠다.)



아마 친구 B양도 대충 이러한 이유로 생일이 머쓱해진 것이 아닐까, 가장 먼저 그녀 생각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 무언가 생각이란 것이 생긴 후 맞은 생일만 해도 벌써 열 번은 족히 넘을 텐데, 너는 그리고 나는 그 묘상한 감정을 어떻게 버텨온 걸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깟 감정 딱히 외로움이라 부르기도 머쓱하고, 우울하다고 해도 딱히 완벽하진 않는데. 우린 대체 왜 그랬지? 다른 사람들 다 괜찮은데 우리만 이상한 것 같아!


무튼 7월 4일이 다 끝나가는데도 저 친구라는 녀석은 -인생의 동반자는 무슨- 축하 한 마디가 없다. 그래서 내가 먼저 선 카톡을 날렸다. "야. 오늘 내 생일임. 까먹음? 아 벌써 까먹었겠구나. 무튼 나 오늘 생일임. 시간 얼마 안 남았다. 축하 메시지 남겨라." 그리곤 지금이 상황이 너무나 우스워 "ㅋㅋㅋㅋ"를 수백 개쯤 보냈다. 그리곤 화룡점정으로 "못생김 사진 투척. 즐거운 하루 되거라. 축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다." 그리곤 정말 주관적, 객관적으로 못생긴 내 사진을 전송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서로의 생일을 깜빡한 것도, 축하 메시지를 생일이 다 지나가도록 보내지 않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뭔가 빵- 웃음이 봇물처럼 터졌다. 나는 생일이랍시고 이렇게 우울 터지는 글을 쓰고 있는데, 특히나 인트로는 네가 등장하는데, 참나. 답장이 온 너는 '홍콩'이란다. 이럴 때 가장 적절한 대답으론? 바로 "ㅋ". 나는 시크하게 "ㅋ"를 하나 보내곤, 우리가 조금은 어른이 되었구나-며 속으로 말을 덧붙였다. 너는 이제는 생일이란 틀에 갇혀 딱히 외로워하지 않는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좀 억울하기도 했고.



문득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1월 1일의 다짐같이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런 거 말고, 진짜 무언가  업그레이드된 그런 거. 더 이상 어린애처럼 '쓰잘데기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나의 하루를 망치지 않으리라, 작은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노트를 폈다. 그리고는 오늘 당장 나에게 선물같이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아래가 오늘 내가 하루 종일 기록한 소소한 행복이다.     


1.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눈을 떴다. 새벽에 친구가 방이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뒀는데,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시원하고 깔끔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쳤다. 오랜만에 피곤하지도, 짜증 나지도 않는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체스키 다락방에서 맞는 아침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2.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발생한 생리현상이었다. 일 평생 했던 트림 중에  손꼽히게 시원한 트림이었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3. 참 아끼는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처음 사고 싶은 것을 주저 없이 샀다. 그녀는 그 작은 찻잔을 보면서 반짝이듯 행복해했고, 나는 그녀의 행복을 지켜보았다.


4. 체코 <Picek>이란 도시를 새롭게 발견했다. 체스키에서 프라하로 가던 길이었는데, 까를교와 비슷한 다리가 있어서 무작정 들어갔다. 아, 그냥 너무 좋았다.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5. 말이 눈 앞에서 돌아다니고, 새 소리가 조용히 지저귀는 한 체코의 농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든 것이 여유롭다.


6. 한국에는 없는 맥도널드 해피밀 미니언 장난감을 득템 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눈이 돌아간다. 뭐 생일선물 대신인 것 같은데, 썩 마음에 들었다.


7. 나는 살아있고 여기 숨 쉬고 있다.


8. 이 문장들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지금껏 뭐 때문에 외로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번부터 7번까지의 문장을 읽어보니 나는 엄청 행복해 보이잖아?


9. 음. 그리고 오늘 가장 행복한 이유는, 내가, 또 하나의 우주가 세상에 내려온 날이니까.

혹 세상에 그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축하해주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너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이렇게 사진과 글을 늘어놓고 뒤돌아보니, 그 날 24시간 온통 행복했던 것 같다. 막상 그 때의 나는 행복하면서도, 과거에 얽매인 괴로운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몇 번이나 고개 저으며 행복하려 노력했던가.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다.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이십오 년이 지난 이제야 마음에 제대로 새긴다. 노력해보니 알겠다. 지난 나의 외로움은 딱히 쓰잘데기 없는 것이었고, 그닥 힘이 없는 것이었다. 그냥 내가 그 어린 마음을 보내지 못할 만큼 소심했던 것일 뿐.


B양도 그것을 알았을까. 생일 선물은 건너 뛰더라도, 그 흔해빠진 간단한 생일 축하도 보내지 않은 그녀는 이미 알았을지도 모르겠다만. 무튼, 그녀도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하하.





그날의 사진 일기

/그날, 그냥. 청민씨의 소소한 하루.


1. 눈을 떴다. 작은 다락방 창문이 나를 맞았다.



2. 선물을 받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생일 선물을 받은 것은 머리 털나고 처음이었다. 하늘은 청아했고 햇빛은 산등성이를 타고 내게 왔다. 바람은 춤을 췄고 새들은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지금껏 생일과는 조금 다르겠구나,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3.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오늘 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가수 아이유님이 부른 좋은 날 가사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날씨였다. 모든 거리에 싱그러움이 톡톡 터졌다.




4. 이 다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한국어 버전으로 들었다. 부끄럽긴 했지만, 좋았다. 오늘은 뭔가 다른 날과 다름이 분명했다.




5. 프라하로 가는 길에 소담한 도시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아기자기했다. 아,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다.




6. 작은 결혼식이 열렸다. 모두가 이 작은 카메라를 향해 환호하며 소리를 질러줬다. 행복해 보였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7. 비싸진 않았지만, 꽤 근사했던 점심.




8. 한참을 달려 도착한 숙소. 체코의 농장에서 지낼 기회가 주어지다니! 이곳에서 나는 지금 이 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9. 프라하의 야경을 보려 했으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피곤해 결론은 맥도널드. 하늘과 간판의 색 조화가 좋아 찰칵.




10. 해피밀을 시키고 받은 미니언 장난감. 나폴레옹 미니언이라는데, 귀.. 귀엽다...




11. 스물다섯, 초라하지만 풍족한 나이.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잊지 말고...... 음, 잘 살자! 파이팅!












글과 사진 청민과 피터.

주 카메라는 니콘 디-오천삼백. 그리고 베가 아이언 2로 조금.



오늘 유난히 글이 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좋은 밤 좋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내일도 그리고 그 내일도 좋은 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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