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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17. 2021

자전거를 타면서 수집한 순간들

퇴근 후 자전거│ written by 브롬톤 라이더, 루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며 도시의 테두리와 가까워졌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중심으로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접이식 자전거라 해도 도심에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카페에서 자전거는 귀찮은 애물단지가 되곤 했으니까.


결국 자전거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도시의 테두리. 조금 멀어도 조용한 공원이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이었다. 차라리 그편이 마음이 더 편했다. 사람들의 눈초리도 받지 않아도 되고, 애쓰지 않고 맘껏 달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달린 도시의 테두리에선 이전엔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순간들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만난 순간들은 시간이 가도 옅어지지 않고 이상하게 자꾸만 짙어졌다.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순간들. 자전거를 타면서 수집한, 조금은 아름답고 조금은 슬퍼서, 일기장에만 기록해 둔 순간들을 소개한다.




순간 하나.

일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망원에 딱 도착한 직후였다. 헬멧 사이사이에 땀이 흐르다 못해 넘쳐선, 목덜미까지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숨을 고르며 안장에서 내려와 자전거 도로를 빠져나오는데, 옆으로 할머니 두 분이 귀여운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뜸 내게 다가와 엄지를 쑥 내밀었다.


‘멋져, 아가씨. 진짜 멋지다. 자전거 탈 수 있을 때 마음껏 타. 열심히 타고 싶지 않을 때까지, 마음껏 타고 떠나!’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 걷는데, 할머니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탈 수 있을 때 타야 해’, ‘맞아, 아이고 예쁘다.’ 귀여운 그들의 격려를 못 들은척 하고 들으며 걷는 길, 괜히 막 마음이 따스해졌다.





순간 둘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운동하는 거 보면 부러워요. 나는 젊었을 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거든.”


지하철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내게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갑작스러운 대화의 시작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마땅한 말을 찾기가 어려워 망설이는데 할머니는 불안한 내 눈동자를 보지 못하고 남은 말을 이어 털었다.


“나는 다 늙어서, 뇌경색이 터지고 그때부터 걷기를 시작했거든. 예전엔 운동이란 걸 할 생각을 못 해봤어. 멋있고 부러워.”


그 말끝에 겨우 ‘아이고, 고생 많으셨겠어요.’라는 말을 찾아냈지만, 할머니의 시선은 자전거와 자전거를 꼭 쥐는 내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은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부럽다는 말을 남긴 할머니는 다리 한쪽을 살짝 절뚝거리며 천천히 사라졌다.


운동이란 게 있는지 몰라서, 운동이란 걸 내가 할 수 있는지 몰라서 못 했다는 말이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맴돌았다. 할머니의 눈빛이 자꾸만 마음에 턱턱 걸려서는, 돌아오는 길 몇 번이나 멈춰 섰다.






순간 셋.


자전거를 끌고 한강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요즘 노들섬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해서 망원동에서부터 자전거 길을 타고 달려서 구경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저 멀리 노을은 천천히 서쪽으로 길게 누우며, 한강은 유난히 반짝였는데. 한강대교 옆으로 경찰차와 소방차가 이어서 멈췄다. 다리의 가운데엔 사람들이 모여선 한강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빠른 신고 덕에 바로 구조가 되었다고, 옆에 있는 사람이 일러주었다. 멀리서 보아도 머리가 새하얀 아저씨는, 짙은 초록색 두꺼운 담요를 두르고 구조선에 앉아 있었다. ‘아직 나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오늘도 힘내요!’ 글귀가 적힌 한강대교 난간 틈으로 사람들은 담요를 두른 아저씨를 보았다. 아저씨도 이쪽을 보는 것 같았는데, 고개를 푹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도 소방차도 하나둘씩 떠났다. 노을은 오늘따라 유난히 붉었다. 사람들은 대교의 글귀 앞에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유난히 긴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나는 도시의 테두리를 만져보지 못했겠지. 만지지 않았는데 손으로 누군가의 테두리를 발견한 것 같은 낯선 감정들이 자전거를 타며 내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수집한 조금은 아름답고 조금은 슬퍼서, 자꾸만 달리고 싶게 만드는 날들이었다.








퇴근 후 자전거

직장인 셀린과 루비의 사이드 프로젝트. 두 직장인이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발견한 장면을 번갈아 가며 기록합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이메일로 총 12회 연재합니다.(6.10 - 8.26)


퇴근 후 자전거 발행인

따릉이로 한강을 달리는 셀린 @bluebyj

브롬톤 라이더 루비(청민 부캐) @w.ch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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