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쓰기

by 낭만피셔

한 주를 마감하면서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머릿속을 더듬고 있었다. 명확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익숙한 아이콘을 누르자 사각형의 프레임들이 수직으로 정렬된 세계가 열렸다. 인스타그램이었다. 나의 디지털 일기장이자, 외면하고 싶은 내면의 기록들이 쌓여 있는 곳.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마주하게 될 날것의 감정들이 두려웠다.


지난 일주일 동안 쌓아 올린 텍스트들을 역순으로 훑어보았다. 검은 활자들이 흰 배경 위에서 유령처럼 떠 있었다. 단순한 문장이 아닌 내가 배설한 감정의 기록들. 기쁨, 슬픔, 분노, 체념, 그리고 깊은 그리움까지. 모든 감정들이 활자화되어 앞에 펼쳐졌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문장들의 습도와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의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는 사라지고 날것의 감정이 문장 끝마다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봉인된 댐이 터져버린 것처럼 내면이 고스란히 활자로 쏟아져 나왔다. 감정의 수위가 내가 생각했던 안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통제 불능의 감정들이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이런 글들을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 노출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가장 깊은 내면, 가장 취약한 부분을 너무 쉽게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무심한 판단도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글로 박제된 감정들이 오히려 나를 특정한 프레임 안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형태가 불분명하고 유동적인 감정에 섣불리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 감정을 영원히 그 모양 그대로 고정시켜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었다. 한 번 활자로 쓰인 감정이 더 이상 변형되지 못하고 영원히 그 모습을 남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의 슬픔이 '슬픔'이라는 단어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될까 봐. 나의 분노가 '분노'라는 틀에 갇혀 버릴까 봐. 글쓰기가 치유가 아닌 나를 묶어두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내 안을 파고드는 무한한 심연으로의 탐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다.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이 필요했다. 익숙한 궤도를 벗어나야 했다. 닫힌 방 안에 홀로 갇혀 감정만을 파고드는 것은 결국 나를 더 깊은 고립으로 이끌 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작은 글쓰기 모임이라도 들어가봐야겠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새로운 시각, 새로운 주제. 나의 글쓰기는 독백이 아닌 소통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정해진 주제, 타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만나는 교차점. 그곳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꽉 닫힌 방의 창문을 활짝 여는 것 같은 효과를 줄지도 모른다.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곰삭아가는 감정 대신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이자. 가끔 낯선 풍경을 보며 머리를 식히는 것처럼 나의 고정된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자. 이런 새로운 시도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정체된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아마 그 과정에서 나는 글쓰기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혼자 쓰는 글이 나를 치유하는 도구였다면 함께 쓰는 글은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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