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 선희 감독 : 홍상수 배우 : 정유미, 이선균, 김상중, 정재영, 예지원, 이민우
"저 사람은 왠지 저런 성격일 것 같아"
"저런 사람 많이 봤어"
매주 목요일 저녁 나와 아내는 거실에 앉아 스트레인저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일반인들이 나와 한정된 공간에서 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니 그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보여주는 행동과 말들이 나를 판단하게 한다.
티브이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 왠지 저럴 거 같아", "저 사람은 저런 스타일이네" 나는 뭘 알고 그 사람들을 단정 짓는 걸까. 본거라곤 편집된 말과 행동뿐인데. 당사자들이 내 얘길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영화 '우리 선희' 스틸컷
사람들은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단정 짓는다. 이름은 간편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들을 단순화시킨다. 우리가 어떤 사물의 이름과 기능을 듣지 않았다면,그 사물은 아마도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이름을 붙이며 그 사물은 가능성을 잃는다. 볼펜을 볼펜으로만 써야할까. 어쩌면 볼펜이 못보다 벽을 더 잘 뚫을 수도 있고, 포크보다 과일을 더 잘 찍을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능성들.
영화 '우리 선희' 스틸컷
“내성적이지만 안목도 있고 가끔 또라이 같지만 용기 있다”
영화 '우리 선희' 속 세 남자가 선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간단하게 '말'로 사람을 단순화시키려는 세 남자와 그것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이야기다. 영화 속 남자들은 끊임없이 선희를 단순화시키고, 소유하고 싶어 하지만 선희는 계속해서 그들을 밀어내고 피한다.
영화 '우리 선희' 스틸컷
"너 정말 순수하구나" "순수해요? 내가 뭐가 순수해요? 농담하지 마세요"
"누가 그래요?" "애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같던데?"
영화의 마지막, 선희는 세 남자를 떠난다. 선희를 놓치고 황망히 남은 세 남자는 선희를 두고 “내성적이지만 안목도 있고 가끔 또라이 같지만 용기 있다”라며 사람 보는 눈은 모두가 똑같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영화 '우리 선희' 스틸컷
나는 어쩌면 조용하고 어쩌면 시끄럽고 어쩔 때는 내성적인데 어쩔 때는 외향적이다. 자주 감성적인데 그만큼 또 자주 냉정하다. 나는 내가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설명하기 어렵다. 자기소개는늘 어렵다. 잦은 감정기복과 여러 생각들. 나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나조차 나를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저 사람을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말'은 편리하지만 한계가 있다. 우리는 '말'의 한계를 항상 주의해야 한다. 우리에겐 단언할 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