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문득 떠오르는 이름 하나는 있어야 인생이다.

미래 수업

by 봄날


일상생활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 카드사에서 삼성동에 있는 호텔의 뷔페 이용권을 연말까지 사용할 것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며칠 전부터 특별히 아내와 함께 시간을 맞춘 날이. 근래 100년 동안 11월에 내린 가을비로는 최대 강수량이었다는 그날이었다. 맞은편에 있는 봉은사도 산책할 겸 브런치도 할 겸 점심을 먹으려고 그 호텔을 찾아갔다.


전날 밤부터 가을비가 소나기처럼 내려서 새벽에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잠을 뒤척이다가 문득 이외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지금은 다행히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서 회복 중이신데 빠른 쾌유를 빈다. 가끔은 정신이 번쩍 나는 촌철살인, 그 지혜의 말씀이 그립다.




“천지에 빗소리 가득한 날, 불현듯 젖은 그리움으로 보고 싶어 떠오르는 이름 하나는 있어야 인생입니다.”.



운전을 하고 지하만 내려가면 목적지의 진입 동선을 찾는 데 아직도 버벅대지만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한 결과 그 넓은 지하 주차장에서 호텔 뷔페에 어프로치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바로 뷔페식당에 도착했다. 평소 행실로 봐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내는 감동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내내 칭찬을 했다.


모과나무


괜히 어깨가 올라가서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여자들보다 길을 잘 찾게 된 유래라며 원시시대부터 남자들은 멀리 사냥을 나가게 되면 여자들이 아이를 카우고 먹거리를 준비하는 동굴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사냥을 하면서도 틈틈이 어떤 랜드마크나 표식들을 기억해두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길을 잘 찾지는 못하지만 아내는 대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몇 년 전에 와보았을 때의 그 뷔페식당의 맛있는 메뉴와 그때 구입했던 나무로 된 크리스마스트리와 호텔 내의 세세한 동선과 추억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남자와 여자는 어떤 성 역할을 떠나서 보편적으로 서로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장점들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


흑단풍

이 세상의 인구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싸우지 말고 서로를 기꺼이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저녁 시간에는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미래 수업( tvn, 11/19)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마침 강경화 장관이 출연해서 ‘총. 균. 쇠’의 저자, 제래드 다이아몬드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유창한 영어나 전문 지식은 차치하고서라도 글로벌한 선수들끼리 초면이지만 서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배려하는 모습의 품격이 느껴져서 보기 좋았다. 그 인터뷰 내용 중 한국의 코로나 극복에 대한 다이아몬드 교수의 질문에 대한 강 장관의 훌륭한 답변도 멋졌지만,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해서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의 문화를 잘 알고 있는 그의 통찰력이 매우 흥미로웠다.




“자연은 또 이렇게 가르친다. 바위와 흙,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로를 인정하고 어울려 살듯 함께 살아가라고. 이를 불가에서는 `용사 동거(龍蛇同居)`라 한다. 용과 뱀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지, 용만 살거나 뱀만 살 수는 없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싸우지 말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



오현 스님



여성들의 기회와 불평등, 그리고 역할에 대해 사회적인 인정이 아직도 미흡한 것에 대해 지적하면서 자신이 만났던 한국 여성들이 절대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향후 한국 사회의 만성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 역시 여성들의 직장 내 유리천장이나 저출산 문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 제래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지적한 것이 사실이고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를 얻지 못할뿐더러 지속적인 발전을 장담하기 어렵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강 장관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는 믿음으로 가정이나 사회에서 함께 협력하고 싸우지 말고 살아야 한다.


한편으로 보면 요즘 훌륭한 젊은 세대들은 가부장적인 기득권을 내려놓고 회사는 물론 가정에서도 가사노동이나 육아에서 이미 공정과 평등의 휴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훌륭한 부부들이 많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결혼하면 man, woman의 젠더를 뛰어넘는 human이 된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은 휴머니즘의 첫걸음이다.



어떻게 보면 후진국을 살아냈던 중장년 세대의 독박 육아, 독박 생계가 내게는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함께 나누어하고 있는 젊은 남자 후배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면 새삼 느낀다. 또한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시절을 잘 견뎌낸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선진국을 살아온 청년세대들과 비교해 보면 가사노동과 육아까지 담당하고 있는 요즘 남자들이 우리 때보다 더 고생하고 역차별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감나무와 까치

그러나 일반적인 현상은 아닐뿐더러 젠더 구분 없이 청년세대들은 회사일 하랴, 가사노동 및 육아하랴 남녀 모두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몇 년 전 개봉했던 ‘82년생 김지영’이란 영화를 보고 여성 관객들은 폭풍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지만, 일반적인 이삼십 대 남성 관객들이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따라서 그 유의미한 영화는 사회적인 화두는 던졌지만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가사노동의 그 디테일을 살펴보면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답게 그런 진보적이고 성숙한 사고와 가사노동 및 육아의 공평 분담을 하고 있는 남성들이 이삼십 대를 제외하면 아직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현실이 문제일 뿐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적 이슈에서도 보고 있겠지만, 어느 곳에서나 면면이 내려온 그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유사 이래로 찾아볼 수가 없다. 변화와 개혁은 내, 외부적 충격이 가해지고, 안타깝게도 우리들 중에서 불운한 그 누군가의 큰 희생이 뒤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수없이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 시대의 흐름인 공정과 정의, 평등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쉼 없이 전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들은 그 역사적인 사실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항상 그들만은 예외라고 믿고 있다.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테스형도 공자님도 부처님도 예수님도 일단은 죽음을 피해 가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거듭나는 것, 즉 부활은 그다음의 일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삶과 밝은 미래를 위해서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남자, 여자) 모두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이좋게 돕고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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