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너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안다는 것과 깨닫는 것

by 봄날


요즘 어떤 연예인이 교제하던 남자 연예인들을 상습적으로 가스라이팅 했다고 해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인구에 회자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해자인 그 여자 연예인도 비난을 피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중 한 남자 연예인에게 더 관심이 갔다.


연기자로서 연애 상대인 그 여자 연예인이 시키는 대로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의 대본을 바꾸고 상대 여배우와의 애정신은 고사하고 지시받은 대로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딱딱하게 대해서 그 상대 여배우를 울게 했다는 대목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배우로서 프로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그의 멘털이 걱정된다. 천박함은 인생의 재앙이다.


전문용어로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실제로는 우리 주위에서도 애정을 핑계로 하거나 사랑을 가장한 가스라이팅이 직장에서, 가정에서, 연인 또는 친구 간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랑과 관심을 빙자한 충고처럼 느껴지기에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관심이나 사랑은 충고의 대상인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직장 상사가, 가정에서 부모가, 친구나 애인이 “다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경우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대부분 그렇게 충고 아닌 충고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애가 매우 강한 사람으로 “항상 자신이 옳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을 늘 중심에 놓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생각대로 행동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충고나 조언으로서 그 누군가에게 무엇을 깨닫게 할 수 있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또한 부모로서, 직장 상사로서, 선배로서 성공하고 실패했던 경험을 무용담이나 참회로서 하는 잔소리만으로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이나 인생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서 이미 매우 불공평해지고 살아볼 만한 가치나 희망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문득 윤편의 일화가 생각이 난다.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윤편(輪扁)(수레바퀴를 깎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扁이라는 사람)이 대청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대청 위를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슨 책입니까?”

“성인(聖人)의 말씀이니라.”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대왕께서 지금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환공이 벌컥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나 만드는 네놈이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가 하는 일의 경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어름에 정확한 치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70 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 성인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은 책에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장자’ 천도’ 편, 출처:인터넷 글




애정어린 충고는 충고를 하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지만, 사랑으로 포장된 가스라이팅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설사 상대방을 위한 애정어린 충고를 한다고 해도 아주 특별한 관계나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원하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맞다. 스승이나 가족이라 하더라도 삶의 태도나 올바른 방향은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 세세한 디테일이나 깨달음은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스스로 땀 흘려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고 인생이다. 한편으로 보면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은 그래서 매우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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