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다수의 유력 정치인, 언론인, 심지어 특검까지 그 연결 고리에 있는 가짜 수산업자의 부패 스캔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에 말뿐이 아닌 공정이 있기는 한 건가 의구심이 든다. 누구 말처럼 그러려고 능력주의를 외치고 그 성취의 결과인 그들만의 특권을 희희낙락 누리고 있는 것인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 정답, 비밀, 공짜 없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그 말 뜻을 되새겨 보게 된다.
요즘 공정이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능력주의를 강화하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공정과 관련한 사회 이슈들에 대해 능력주의에 의한 해결만이 공정하고, 능력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면 그게 불공정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말 같지만, 한편으로 보면 기회의 불균형과 불평등에 대한 배려나 고려 없이 과연 능력에 따른 보상만이 매우 공정한 것일까 돌아보게 한다. 그 능력이라는 것이 오롯이 스스로 혼자서 노력한 성취의 결과라는 것에는 우리 주변만 둘러보아도 흔쾌히 동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TV를 보다 보면 여러 국제기구와 각종 사회단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상의 가장 아픈 곳을 보여주고, 또한 우리나라의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을 보여주면서 주변 이웃들에 대한 돌봄과 자선을 호소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그 나라에 태어나고, 그 부모를 만나서 각종 기구와 단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과연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균등한 것인가, 또한 그들의 취약한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의 나의 능력이 정말 나 스스로만의 능력일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지금도 코로나 사태로 취업 준비생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지만, 오늘의 사십 대들 중에도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에 빠지면서 취업이 되고도 구조조정 중에 신입사원을 채용할 명분이 없어 채용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일 년 후에 간신히 입사를 했던 분들이 있다. 지금의 오십 대가 취업을 준비하던 그 시절에는 무슨무슨 학사 외에 어떤 변변한 스펙이 없어도 지금의 10대 기업그룹에 취업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운이 좋아서 시대를 잘 만난 사람 중에 속한다.
스스로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건강하고 무탈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어찌 보면 좋은 부모를 잘 만난 덕분에 아르바이트 한번 안 해보고 대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유전적 문제없이 건강하게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큰 고마움은 현명한 아내를 만난 덕분에 육아, 자녀 교육, 재테크 등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회사 일만 집중할 수 있었고, 1%에 드는 직장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아내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처럼 나 혼자 스스로 노력한 결과 그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장 생활의 과정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그렇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회사 생활에서 힘들고 좌절할 때 큰 힘이 되어주고 나를 응원해주었던 든든한 선배들, 추진했던 업무에서 군말 없이 믿고 따라주며 열심히 일해주었던 훌륭한 후배들이 고비고비마다 격려해주고,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취였고 결과적으로 능력이란 많은 기회와 행운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누군가 삶이란 돌아보고, 둘러보고,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능력만큼 보상받는 것이 공정이라고 말하는 것에 딱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단 한순간도 내 능력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매일매일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서비스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둘러보아야 한다.
늘 감사하고 겸손하게 살자. 그래도 누군가 기회의 불균형과 불평등에 대한 배려나 고려 없이 자신의 능력만큼 보상받는 것이 ‘온전한 공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그의 삶에서 설사 조금 재수가 없거나 운이 나쁜 일이 발생하더라도 너무 좌절 않기를 바란다. 운명이란 앞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와 같은 것이니, 예의 그 능력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피해 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