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Far Niente

by 봄날


몇 년 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가 결혼 소식을 전했다. 회사 일도 열심히 하고 좋은 모습으로 생활하던 후배였다. 주말 운동 선약 때문에 결혼식은 참석 못하지만 의미 있는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생각 끝에 와인을 한병 구해 결혼식에 참석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선물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와인이 ‘Far Niente’라는 미국 나파밸리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화이트 와인이었다.


‘far niente’(아무것도 하지 않기, 무위)는 이태리어 Dolce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아무 걱정 없는 안일, 안락을 뜻하니 달콤한 결혼 생활을 축원하는 의미가 좋은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ar Niente


날씨가 따뜻한 주말, 늦은 오후에 거실에 누워 열심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아내가 문득 내게 말했다.


“여보, 오늘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서 게임만 했더니 그냥 하루를 허투루 보낸 것 같고 불안한데”


“나처럼 가만히 앉아서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다 졸리면 잠깐 자고 그러면 그냥 잘 쉬는 거 아닌가”


아내는 관성의 법칙인지, 오래된 습관인지는 몰라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해서 불안한 것 같다. 반대로, 나는 ‘선비적 게으름’ 때문인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이 좋다. 아니, 삼십 년이 훌쩍 넘게 시계추처럼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만 해서 그런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사 안일, 룸펜(Lumpen) 같은 삶이 늘 소원이었다. 또, 운이 나쁘면 일만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음악 듣고, TV 보고, 커피 마시고, 졸리면 다시 낮잠 자는 주말이 소원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주말엔 가족을 생각하면 늘 그렇질 못했고, 회사 직급이 높아졌을 때는 생계형 운동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다. 그걸 불평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휴식시간을 소비하고 즐기는 방식은 아니었다.


휘슬링락


추위를 싫어하지만 나는 추운 겨울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대략 삼 개월 정도는 주말마다 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 이틀만큼은 늦잠 자고 일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사안일의 삶을 즐길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중장년 세대중에는 생계가 아닌데도 일을 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의 정답은 없으니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을 계속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일을 하지 못하면 그 나머지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언젠가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부산역에서 해운대 호텔까지 가는 내내, 칠십이 넘은 택시기사님께서 친구들 중 일하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모른다. 아내와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어 그냥 듣기만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면 이혼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30대 말이나 늦어도 40대 초반까지는 조기 은퇴하겠다는 목표로 회사 생활을 하는 20대부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며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파이어족도 생겨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잘 쉬는 것도 어찌 보면 일하는 것과 같다. 다시 에너지를 재충전해야만 또 다른 무엇인가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준비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동물의 왕국’을 보고 있으면 아프리카 사막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숫사자가 미동도 없이 죽은 듯, 가만히 쉬거나 졸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하지만, 적당한 먹이를 발견하는 순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언제 그랬냐 싶게 쏜살같이 내달린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는 얼룩말의 최선을 그의 최선으로 덮고 낚아채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축구선수 메시나 호날두 역시 그렇다. 전후반 내내 그라운드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공이 날라 오는 순간만큼은 먹이를 발견한 사자처럼 골문을 향해 내달리고, 결국 그의 발끝에서 해결하고야 만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그게 맞는지 틀린 지는 결국 내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 증명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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