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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곧 신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남양성모성지

by 봄날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대칭, 적벽돌, 가로줄, 둥근 선)가 건축한 화성 남양성모성지에 다녀오고 싶다는 아내의 주문에 따라 유월의 좋은 날을 택해 다녀왔다. 가끔씩 연말 성탄절 전에 그 성당을 다녀오긴 했지만 이번엔 아내가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와 성당의 이상각 신부님이 공동진행 중인 티채플하우스의 건립에 기부금을 보태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곧 신의 얼굴을 보는 일이니까.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뒷모습


마침 그날이 좋은 사람, 바르나바(st. Barnabas) 사도의 축일이었기에 이상각신부님의 강론 주제가 되었다. 신부님은 좋은 신도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사람이란 남들을 배려하고 친절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을 경쟁자로 생각지 않아 시기와 질투에서 오는 악업을 쌓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을 성찰하며 올바른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 중앙계단


신부님의 강론 내내 어용신자인 나는 대성당에 걸려있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의 드로잉 성화, 최후의 만찬과 좌측편의 수태고지를 바라보며 사색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과 그 고지후 임신을 한 성모 마리아가 멀리 떨어져 사는 사촌언니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지금도 처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거늘, 2천 년 전의 그 시대엔 얼마나 두려움이 컸을까 상상해 봤다.


대성당


대성당의 오전 11시 미사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병인년(1866)의 순교지인 남양성모성지를 갈 때마다 늘 묵었던 화성의 호텔을 예약했고, 일박이일의 트렁크와 커피, 과일만 챙겨 차에 올랐다. 차를 운전하고 가는 동안 아내는 옆에서 기분이 좋은지 명랑한 모습으로 말이 많아졌다. 아내는 대학시절 혜화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지만 혼배성사를 마다한 나 때문에 냉담한 지 오래이다.


파이프오르간


신부님의 강론 내내 ‘생각과 행위와 말’로 많은 죄를 짓고 사는 나는 좋은 사람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문득, 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옆에서 명랑했던 아내를 바라보니 그 표정이 너무 거룩하고 우아해 보여 마치 딴사람 같았고 낯설었다. 무더운 여름천정 에어컨은 장식일 뿐 선풍기를 켜고 사는 아내는 미사에 참석하기 전에 티채플하우스 건립기금후원서에 서명을 하고, 월 2만 원씩 50개월 기부가 아닌 백만 원을 바로 이체했다.



반면, 난 곧 나라에서 보편지원 예정인 민생회복지원금을 받으면 동네 어느 식당, 어느 가게에서 그 취지에 맞게 사용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런 속물인 나와는 달리 아내는 좋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코로나시절에 나도 재난지원금 백만 원을 진짜 재난에 당한 사람들을 위해 수령을 거부하고 통 크게 기부한 후, 민생회복의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사용치 못했다고 두고두고 후회했다.


롤링힐스호텔, 화성 활초리


만약 이번에도 민생회복지원금을 수령하면 스타벅스를 제외한 동네 커피집, 치킨가게, 고깃집 등등 하반기 내내 일부러라도 골고루 사용하고 연말까지 모자란 것은 그 금액만큼 더 매칭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그나마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그동안의 ‘생각과 행위와 말’로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상쇄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의 한 명, 이스라엘의 한 명, 러시아의 한 명에 대해 밤산책을 마치고 가까운 성당의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 세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미사가 끝나고 남양성모성지를 둘러본 후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난민들과 러시아의 침공에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촛불을 밝히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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