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 2022))
파도소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걷던 낭도 둘레길 트레킹을 하는 내내 아내는 최근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 영화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 2022)이라는 영화였다. 결혼생활 29년 차 된 부부가 겪게 되는 갈등과 이혼, 그리고 그 두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지만 한편으론 상처받고 성장해 나가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면 들린다.
내성적인 역사 교사 남편 에드워드(빌 나이)와 시를 엮는 쾌활한 부인 그레이스(아네트 베닝), 그리고 그들의 아들 제이미(조쉬 오코너)가 주인공들이다. 두 시간 정도 섬둘레길의 오솔길을 걸으며 아내가 유튜브의 요약본을 본 것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했고 그 영화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부부가 흔히 겪을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레이스역의 영화배우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다.
영화, ‘벅시’(Bugsy, 1992), ‘러브 어페어’(Love Affair, 1994)의 그 매력적인 아네트 베닝의 연기를 볼 수 있는 기대감이 생겼다. 일박이일의 섬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와 주말 아침에 아내와 함께 그 영화 호프갭을 보았다. ’글래디에이터‘의 각본을 쓴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영화답게 영국해안마을의 풍경과 바닷가 절벽의 경치를 매우 훌륭한 촬영과 함께 그 아름다운 영상만으로도 잠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내성적인 남편 에드워드는 언제나 아내가 원하는 요구와 기대에 맞추어주고 살아왔지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사랑이었을까? “란 영화 포스터의 카피가 보여주듯 늘 회의가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사별한 학부형인 안젤라라는 새 여자가 생겼다며 그의 아들과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아내의 일방적인 요구와 기대에 말없이 부응해 왔지만, 그 문제를 직접 마주하거나 투쟁하지 않고 회피해 왔으며 그저 벗어나려고만 했던 당연한 결과였다.
갑작스러운 남편 에드워드의 행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내와 그런 부모의 현실이 혼란스럽기만 한 아들 제이미를 지켜보면서 매우 객관적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연인이든 부부든, 그 두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은 대화와 솔직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방의 지나친 요구와 기대에 타협하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거짓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기보단 상대방의 잘못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결국 어느 순간에 뒤통수를 칠 수밖에 없는 비겁하고 의리 없는 인간이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면 이 영화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속 좁은 자신이 겪었던 모든 상처를 상대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치고 한꺼번에 되갚는 것은 인간실격이며 상대방이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남편의 새로운 여자, 안젤라의 집으로 찾아간 부인 그레이스는 남편 에드워드를 만나고 문제를 만들지 말아 달라는 남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안젤라가 나타나서 그레이스를 만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아내 그레이스가 내 남편을 뺏어갈 권리가 없다고 말하자 안젤라는 “예전엔 세 사람이 불행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만 불행하네요.”하고 말했고, 그레이스는 문을 닫고 나오게 된다. 그리고, ‘투쟁해 봤자 허사라고 말하지 말라’(아서 휴 클라우)는 시의 자막이 흐른다.
투쟁해 봤자 허사라고 말하지 말라
노동과 상처가 헛되며
적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조금 더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친 파도가 헛되이 부서지며
이곳에선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나
저 뒤쪽에선 작은 개울과 만을 이루며
조용히 밀려오고 있지 않은가
햇살이 들어올 때 동쪽 창으로만 오지 않으니
앞에서 본 태양은 천천히 솟아오른다 얼마나 느린가
하지만 서쪽을 보라 밝게 빛나는 대지를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뒤통수를 치는 게 제일 나쁜 짓이다. 음흉하지 말고 쓰면 쓰고 달면 달다 말을 해야 한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싸우기 싫어서 문제를 회피하고 벗어나려고만 하면 그 끝은 결국 뒤통수를 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처럼 마음이 좁으면 문제가 커지고 마음이 넓으면 문제는 작아진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성장하고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