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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세상에 있는 우리의 구석이다

시니어인턴

by 봄날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 후 유퀴즈의 모 광고대행사 시니어인턴 이야기를 다룬 TV를 봤다. 그 회사는 수평조직이라 서로 영어이름을 부르는지라 반도체회사 부사장 출신의 시니어인턴 ‘올리버’와 그의 상사인 삼십 대 초반의 여성 ‘주니’가 같이 출연해 그들의 회사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글로벌 광고대행사인 그 회사에 대해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터라 낯설지 않았다,



그 시니어인턴분은 회사생활을 마치고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여기저기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삼 개월씩 세 번 연장된 인턴을 마치고 집에서 쉬는 날이 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은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구석, 케렌시아(쉼터)이다.



영화 ‘인턴’(2015)의 로버트 드니로 같은 에피소드와 회사 생활을 들려주었고 재미있게 보았지만 한편으론 그의 경력으로 보아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 아닐진대 왜 그렇게 일이 하고 싶은지 몹시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하릴없이 노는 게 견디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아내의 잔소리가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일견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덕숭산 수덕사, 충남 예산

내 탓을 성찰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밖에서 일할수는 없으니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반면, 그의 상사 주니는 사회자의 질문에 정년까지만 일하고 싶고 가능하면 더 일찍 은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처럼 청년세대는 오히려 조기은퇴를 위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번다. 생계를 위한 일만 중요한 일이고 그 외의 일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이다. 은퇴 후 논다는 것은 집구석에 틀어박혀 숨만 쉬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사회 봉사 활동을 하든, 아내와 함께 하루 삼시 세끼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가사노동을 분담한다면 일이 없어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 그나마 건강할 때 서로 돕고 살 수 있다. 집은 좁아도 함께 살 수 있지만 속이 좁으면 함께 살 수 없으니까.


아무도 관심 없는데 노년에 취업해 일한다고 남들에게 허세를 부릴 게 아니라면 작은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라도 직접 경영하면 평생 힘닿는 데까지 일을 할 수 있다. 그것도 싫으면 귀촌해서 작은 논밭이라도 하나 경작하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인간은 대개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고, 30년 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30년 놀 수 있는 것만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최고(1위)이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면 슬프지만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사회적 분위기와 중장년세대가 놀 줄을 모르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건강문제없이 장기적으로 놀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이 된다면 큰 복이거늘, 그 복을 복인줄 모르고 살면 백세시대는 그들에게 재앙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일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난 본분은 자기 마음껏 사는 데 있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대개 생계유지와 은퇴 이후의 편안한 노후생활을 위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영의 신이라는 교세라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 (저서,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의 말처럼 자신의 인격수양을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목적이 전도될 수는 없다. 일은 행복한 삶을 위한 과정이고 수단일 뿐 인생의 목적은 아니니까.


수덕사 수덕여관, 고암 이응노 화백


물론, 인생의 정답은 없다. 은퇴를 하고도 일이 하고 싶은 사람은 일을 찾아 계속하면 되고, 놀고 싶은 사람은 놀면 된다.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 단지 그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삶을 살고 그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후생활의 ‘퍼펙트데이즈‘(2024)를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마인드마크(mindmark)는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 지점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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