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세계테마여행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파리지엔과 함께하는 프랑스 소도시 여행이란 부제로 노르망디에서 두 시간 떨어진 브르타뉴란 프랑스 북서부 해안도시를 소개했다. 그중 갯벌 생굴 따기 체험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어부와 함께 밀물 때에 트랙터를 타고 굴양식장이 있는 무릎깊이의 바닷속으로 나가 생굴을 따고 돌아와서 바닷가를 배경으로 화이트와인과 그 생굴을 굴껍데기채 들고 시식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 일로 주로 밀라노 출장을 많이 다닐 때였다. 출장 갔던 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환승을 했다. 밀라노 출장을 나갈 때는 늘 시차가 바뀌어 현지의 밤시간이었고, 또한 약간의 설렘과 긴장이 있었다.
하지만 업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는 마음도 편했고 여유가 있었다. 파리공항에서 인천공항행 밤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내 오이스터바에서 화이트와인 한잔과 함께 생굴(석화)을 몇 개 시켜 먹곤 했었다.
갑자기 그 생각을 하면서 TV에서 봤던 국회 법사위의 서울 남부지검 관봉권 띠지 분실 청문회가 생각났다. 작년 연말에 있었던 그 관봉권 띠지 분실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했던 검찰수사관의 답변과 태도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청문회에 출석한 그 수사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는 말만 되풀이했다. 계속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앞뒤가 맞지 않았고, 그 말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결국 그 수사관의 답변과 태도로 인해 그 사건은 특검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앞날이 창창한 젊은 수사관에게 닥칠 거대한 시련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될 판국이 되었다.
밀라노출장을 많이 다닐 때쯤 ‘광수생각’이란 시사만화가 매우 인기가 좋았다. 그중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명작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그 내용은 사진을 첨부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종이비행기를 접어봅니다”
“사람들에게는 종이비행기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언제쯤 완전히 접을 수 있을까요 “
그 샤를 드골공항의 오이스터바에서 먹었던 화이트와인과 생굴의 기억처럼, 또는 어릴 때 자주 날렸던 종이비행기 접기처럼 20년, 50년이 된 기억도 아직 우리가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는 반면, 지난 비상계엄의 기억처럼 잊어버리고 싶지만 트라우마가 되어 잊을 수 없는 기억도 있다.
전자를 우리는 추억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우리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을 땐 그냥 내 방식대로 하면 된다. 인생은 결국 혼자 감당하는 시간이 만드니까.
어느 신문에서 최근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곧 검찰청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검찰은 민주 정부에서 보장된 ‘정치적 독립’을 악용해 스스로 정치권력을 넘보는 집단이 됐다”며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검찰권을 자신들의 보스와 조직을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과연 그 선택적 수사, 선택적 기소라는 무소불위 권력의 근원이 사라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아무튼, 빠른 걸음도 좋지만 바른걸음이 더 중요하니까. 무엇이든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