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영화감독 장항준, 요즘 ‘왕과 사는 남자’가 14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추석 연휴에 동시 개봉한 유승완 감독의 ‘휴민트’와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 ‘베를린’(2013)이란 영화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먼저 ‘휴민트’를 봤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화면이 불편했고, 그 이유는 탈북 여성에 대한 고문장면과 죽음 그리고 러시아 마피아에 팔려가는 북한여성 인신매매 장면의 연출이 보기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 영화를 봤던 관객들의 구전이 그만큼 무섭다.
그 영화를 보고 아내와 나는 동시에 관람객 450만 명이 손익분기점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의 시대정신이라면 주고객층인 여성관객들이 ‘휴민트’를 불편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승완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 만드는 재주와 자기 생각이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었기에 그 영화를 보고 많이 안타까웠다.
천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불편한 장면만 아니었으면 5백만은 무난히 넘길 수 있는 영화였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와 비교해도 구성과 스토리, 연출 또한 그에 못지않았고 오히려 더 영화다웠다. 사실 개인적으론 ‘왕사남’은 잘되면 5백만 정도일 줄 알았다.
단지, ‘휴민트‘와 차이가 있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잘 읽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세상의 상식과 공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란 사태로 인해 불의에 항거하는 시민사회의 모습이 그 영화를 통하여 표출되면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또한, 단종을 새롭게 재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돌 배우 박지훈을 내세웠고, 친숙한 유해진배우를 통해 재미와 슬픔을 동시에 표현했다. 음식맛으로 따지면 요즘 대세인 단짠의 맛이라고나 할까. 장항준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함께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는 최상이었다.
영화 ‘휴민트’는 조인성 배우, 박정민 배우가 열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 2백만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클래식’(2003) 때부터 오랫동안 조인성 배우를 지켜봐 왔다. ‘비열한 거리’, ‘안시성’, ‘모가디슈’등, 그의 성장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과 외모등 많은 면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박정민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평가될 뿐이다.
한편, 이미 잘 알고 있는 단종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가 히트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주변사람들과 일반인들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TV에서 보는 모습과 화면 밖의 장항준이라는 사람은 언제나 유쾌한 어른이었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결핍이 없으니 또한 콤플렉스가 없다. 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먼저 배려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니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착한 사람이다. 게다가 가볍지만 새털 같지 않고 생각의 무게중심이 있다.
오랫동안 영화감독으로 일했지만 변변한 히트작도 없고, 결혼 후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아내의 유명세에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환경을 삶의 유쾌한 소재로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만큼 결핍이 없고, 자기중심을 잘 잡고 생활하는 모습이 결코 그를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그가 결국 대단한 일을 해냈으니 모두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일 게다. 장항준 감독은 “인생을 춤추면서 살되, 남의 장단에 춤추면서 살지는 말라 “고 말했다. 결국 무엇이든 좋은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만들면 잘될 수밖에 없다.
천만을 앞둔 시점에서 ‘왕사남' 호랑이 CG 지적에 장항준 감독은 오히려 "연기, 시나리오, 역사왜곡 논란보다 낫다 “라고 말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기죽지 않았다. 자신은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 아니니 그런 말에 기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처럼 어떤 분야든 속도보다 지치지 않는 게 살아남는 비결이다. 그에게서 교훈을 얻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방을 터뜨릴 수 있다는 희망일 것이다. 세상은 지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보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