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싶다면 그건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정성

by 봄날


주말 오전, 영화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는 삶을 살다 보니 그 시간에 맞추는 것마저 아침부터 무척 바쁘기만 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출연해서 강인한 어머니상을 연기한 염혜란 배우를 좋아했던 아내가 그녀가 출연한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른 아침부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야구경기를 보았고, 한 편의 드라마를 썼던 호주전과 달리 예상했던 대로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통영유람선터미널과 통영시내 전경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니까, 크게 개의치 않고 쇼핑몰에서 즐겁게 영화를 보고 맛있는 점심을 해결하고 들어올 요량으로 서둘러 쇼핑몰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주말이라 번잡한 쇼핑몰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내 직함을 부르면서 너무 반가워했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십 년 전쯤 함께 일했던 후배 과장이었다. 이제 사십 대 중반이니 중후한 모습이었고, 아내와 함께 쇼핑몰에 왔던 모양이었다. 잠시 서로 안부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못 봤지만 피해 가지 않고 먼저 반가워해 주니 인생을 잘 살았다고 말했다.


당포성, 통영 산양면


아내 또한 내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야구 때문에 조금 언짢았던 기분이 그 만남으로 인해 다시 좋아졌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여주인공 염미정(김지원)의 말이 생각났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라는 대사다. 아직까지 사람이 그리운 적은 별로 없지만, 난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 속의 캐릭터가 그리울 때가 있다.


통영전경, 미륵산 정상


어른이 되고는 영화배우나 탤런트, 그 개인을 좋아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들이 연기했던 캐릭터를 좋아할 뿐이다. 가끔 그들이 음주운전 등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 개인의 사생활, 즉 삶엔 별 기대를 안 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이 없으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매드 댄스 오피스’를 보는 동안 두 명의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독립영화 ‘십개월의 미래’(2021)에서 열연했던 최성은배우와 드라마 ‘사랑의 이해’(2022)에 출연했던 양조아배우이다.


진달래, 통영 미륵산(461m)


그 두 배우 모두 그 영화와 드라마에서 분명 인상적인 연기를 했음이 틀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서 작은 배역일지라도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빛을 발한다. 모든 성공은 그렇게 정성스럽게 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역린’(2014)의 대사,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스탠포드호텔& 통영국제음악당


중용의 한 구절이라지만 그 명대사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작은 역할, 작은 일에서부터 그렇게 정성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의 주인공 염혜란 대배우처럼 거듭나지 않을까. 잘 보이고 싶고, 감동시켜주고 싶은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또한, “재능은 1%고, 99%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엉덩이 힘이다. 기적은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에게 온다 “라고 김은숙 작가는 말했다.


통영국제음악제(TIMF, 3/27-4/5)


결국 성공의 여부는 그런 꾸준함과 인내심에서 갈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1%의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 그리고 더더욱 최고는 될 수 없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은 그냥 취미로 즐기면 된다. 우연히, 회사후배를 만났더니 내가 회사생활을 오래 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 덕분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