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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괴롭나요

좋은 팀장의 조건

by 담담댄스

본의 아니게(?) 팀장으로 3년여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 회사를 갈 때 팀장이 될 것이라 생각지도 않았고, 입사하자마자 팀장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날 바로 퇴사가 마려웠다. 하지만 밥은 굶을 수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팀원일 때 '팀장'이라는 존재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싫었던 사람이다. 아무리 인성이 좋은 분이라고 해도 팀장님이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그때 내가 너무 어렸고 많은 레퍼런스가 없었다는 데 있었다. 당시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편한 팀장'이 되겠다 마음먹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편한 팀장이 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무능력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팀장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순한 의사결정도 쉽게 내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논리적인 사고 회로는 마비됐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어떤 역량으로 팀으로서 임팩트를 남겨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팀원들은 내가 생각했을 때 무척이나 유능한 인재들이었다. 무능력한 내가 그들에게 빌붙어 가기 위해서는 편한 팀장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농담도 하고, 토크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그런 사이가 돼야 긴장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잘 다듬어서 보고하고, 실행하고, 성과를 가져오면 되는 것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팀원들의 아이디어에 숟가락만 얹으니 일이 술술 풀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팀이 좋은 평가를 받자, 내가 줄 수 있는 좋은 평가의 적용범위도 높아졌다. 바라던 선순환의 그림이었다.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다. 소심하고 옹졸한 나는 가끔 선을 넘는 듯한 팀원들의 발언에 화를 삭여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론 팀원들의 R&R이 아닌 업무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이 일을 왜 우리가(네가) 해야 하는지 불합리의 영역을 합리로 포장하는 데 정말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했다. 설득이 난망스러워 보이면 그냥 내가 했다.


그리고 괴로웠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 일을 우리가 맡아야 하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였고, 팀 역할도 애매하고 추상적인 팀이라 명확한 다른 팀 도메인에 없는 일은 웬만하면 다 처리해야 했다. 초반엔 커리어에 대한 간절함이 그것을 가능케 했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불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야 말았다. 내가 납득이 안 되는 일을 팀원들에게, 후배들에게 부탁할 때 무척이나 괴로웠다.


평가 시즌이 되자 더욱 괴로웠다. 팀장을 맡은 3년 내내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없었다. 그럴 땐 아끼는 팀원이라고 해도 모두 A를 줄 수 없었다. 왜 당신에게 A를 줄 수 없었는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경우에도 괴로웠다. 누구든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평가는 '잘'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지만, 본인의 부족함을 메우려 가장 열심히 한 사람의 성과가 가장 미진했을 때,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회사를 이직하기로 결심하고, 이직이 결정됐을 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더 이상 팀장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직할 회사에서 면접 볼 때, '이제 더 이상 팀장이 아닌데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는데, 너무나도 진정성 있게 '그럼요! 심지어 팀장님의 고충에 공감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만났던 좋은 팀장님들은 내 기억에는 어려운 부탁이나 업무지시를 할 때 고뇌가 드러났던 분들이었다. 결코 미안함은 아니지만(사실 미안할 필요는 없다, 그분들도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이니까) 괴로웠던 것이다. 내가 좀 괴로웠다고, 그분들과 같이 좋은 팀장이었을 리는 없다. 전혀 괴로워하지 않을 일에도 괴로워한다면 그건 좀 과민한 것일 테니까, 그리고 괴로움에도 수준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앞으로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만날 상사들에게서 저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웬만한 일들은 군말 없이 따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결정이 내가 부당한 일도 쉬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나의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의 결정이라면 일단 따를 것이다. 부당한 지시가 잦아져 내가 괴로워진다면, 그땐 아마도 내가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가장 괴로운 얘기는 회사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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