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단상
며칠 전의 일이다.
보통 5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아침형 인간인가 싶겠지만,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다. 전날 무려 8시(20시)에 잠이 든 탓이다. 일찍 깨서 일찍 자는 건지, 일찍 자니 일찍 깨는 건지 모를 일이다. 요즘의 루틴은 이렇다.
보통 일어나면 핸드폰으로 몇 가지 뉴스를 보고, 커뮤니티 글도 보고, 유튜브도 보면서 적당히 잠을 깬다. 왠지 모르게 이 날따라 유독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어려웠다. 집에서 6시 30분이면 출근하곤 하는데, 결국 8시에 나서고야 말았다.
나오자마자 지독한 게으름에 금세 자책하게 된다.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있다. 게다가 장마기간이다. 내 손에는 우산, 가방, 핸드폰, 지갑까지 정신없이 들려있다. 선택지는 많지만 탈 수 있는 모든 버스의 앞문으로는 들어갈 틈이 없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뒷문으로 낑겨 탑승한다.
습기 가득한 버스 안, 최대한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을 짜낸다. 한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어 나머지 한 팔로 어디든 잡고 버텨낼 뿐이다. 오늘 같은 날은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는 것도 사치다. 초여름의 풀냄새는 무척 좋지만, 장마철의 꿉꿉한 냄새는 참을 수가 없다. 이런 날에는 빨래를 잘 말리지 않으면 모두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빨래를 잘못한 모양이다. (어우 씨 나는 아니겠지?)
신도림역이다. 내릴 때 버스카드 찍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내려버린다. 비는 내리지, 곳곳에 패인 물웅덩이를 피할 길 없어 최대한 조심스레 밟을 뿐이다. 애꿎은 양말만 젖는다.
버스는 양반이다. 일단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대고 문을 통과하기도 전에 뒷사람이 카드를 대 버릴 지경이다. 자우림이 신도림역을 찾은 시간은 아마 출근시간이 아니었나 보다. 아침 8시 30분의 신도림역에서는 스트립쇼를 하고 싶어도 옷을 벗을 틈조차 없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게 아니고, 지하철이 사람들을 토해내는 것만 같다.
지하철 안,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어김없는 사운드가 들린다.
밀지 마세요
안다. 밀고 싶어서 미는 사람은 없음을. 그저 지각하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푸시맨, 푸시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적도 있었다. 누가 밀지 말라고 하니
누군 밀고 싶어서 미나! 꼬우면 택시 타든지,
다들 돈 없어서 지하철 타면서 유난 떨지 말라고 쫌!!!
그렇게 싸가지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근데...... 맞는 말이다. 돈이 없으니 지하철을 타는 거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에혀...... 차는 있겠지만, 평일 출근길 기름값과 주차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 월급쟁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겨우 도착했다.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겨드랑이와 양말이 동시에 젖은 것이다. 이러면 나는 그 어떤 의욕도 잃어버린다. 겨드랑이와 양말이 젖은 채로는 일도 사람도 만나기 싫다. 버스에서 신경 쓰였던 땀냄새, 빨래냄새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끔찍하다.
아무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냅다 자리에 앉는다. 이미 출근만으로 톰소여의 모험급. 기란 기는 다 빨렸다. 점심시간까지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아침이다.
이런 날 유독 출근하자마자 벨소리가 울린다. 클라이언트다. 대꾸할 기운도 없을 것 같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말도 안 되는 일. 솔 톤으로 양껏 친절을 담아 전화를 받는다. 아마 속으로 너도 이러지 않겠어?
아오, 일하기 싫어
그래 나처럼 너도 싫겠지. 상대방은 내 얼굴이 보이지 않겠지만 갑작스레 공감의 미소가 번진다. 그 전화가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었을까. 일하기 싫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삐 오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