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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똥멍청이가 서울대 간다

공부머리와 일머리

by 담담댄스
나는 멍청이~♬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많이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이 간단한 표 하나 그리지 못하기도 하며, 가끔씩 5살 먹은 우리 애도 안 할 법한 어이없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반면에 학벌은 내세울만하지 않아도 손과 눈이 빠르고, 일머리가 있어서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들도 있다. 우선순위에 대한 탁월한 정무적 감각, 보고의 타이밍과 화법, 효율적인 프로세스와 업무처리 속도.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면도 있고, 커리큘럼 밖에서 체득한 것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일머리가 좋다. 실전만큼 훌륭한 교재는 없다. 연습경기를 아무리 해도 실전만큼의 긴장감을 자아낼 수는 없는 법. 학창시절 직접 알바를 뛰면서 손님을 응대하거나 단순 업무라도 어렸을 때 먼저 경험해 본 사람들의 숙련도는 짬이 쌓일수록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그 일을 하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상황과 맥락을 감안해 적시에,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판단력까지 시나브로 익히는 것이다.






공부를 조금도 아닌 어마무시하게 잘한, 소위 SKY 나온 사람들이 왜 회사에서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을까. 한 번 파고들어 보자 싶었다. (물론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사실 파고든 것은 아니고 이걸 깨닫게 된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SKY는 찜 쪄먹고 외국에서 대학 나왔나 싶을 만큼 스마트한 선배를 이전 직장에서 만난 적 있다. 그런데 이 분이 인서울 4년제를 나오셨다는 거다. 물론 그 학교도 웬만한 인문계 고등학교 반에서 5등~10등은 해야 갈 수 있었지만, 이 분의 센스와 일머리, 합리적 사고는 분명 그 이상의 학벌을 가졌다 해도 충분해 보였는데 말이다.


선배와 친분이 쌓이고, 그 비밀(?)을 들을 수 있었다. (후배인 내게 늘 존대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인품까지 지닌 분이다)


제가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했어요. 그러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진짜 이것만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나? 더 재밌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고등학교 들어가서 노는 친구들하고 술도 먹어보고 담배도 피우면서 엄청 놀아 봤어요.

그러다 '아! 해보니까 공부가 더 낫겠다' 싶은 거죠. 정대만처럼 1~2년 공백이 있다 보니 농구처럼 공부도 3학년에 따라잡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간 거예요.


그제서야 알았다.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분명히 한 번쯤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거기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거나 냉정하게 '내가 갈 길이 이 길밖에 없구나' 깨닫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 공부머리도, 일머리도 좋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한 이들은 선배처럼 꼭 다른 것을 해본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좋은 대학은 못 가더라도 그 경험의 시간만큼 나중에 사회에서 만나면 일을 잘하게 되는 거다.


대부분의 명문대생은 그런 질문을 한 번도 안 던져본 것이다. 그저 시키니까, 잘 참고 버텨서 좋은 대학교를 간다. 그게 아둔한 건지, 우직한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내가 주구장창 부르짖는 메타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메타인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입식 공부만 했으니 응용력이 필요한 일머리가 떨어질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메타인지에 대해 한 가지 더 하고픈 얘기가 있다. 사실 공부를 엄청 잘한 사람들이 의외로 메타인지를 잘못하는 경우가 잦다. 시켜서 한 공부를 압도적으로 잘하다 보니 주변에서 칭찬을 받게 되고, 다시 공부를 더 잘하게 되는 이른바 긍정적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본인이 어떤 면에서 부족한지 놓치기 십상이다. 심지어 실제로 부족한 부분도 잘한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를테면 공부머리도 좋으니까 일머리는 당연히 좋으리라는 식의 착각 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살면서 제일 좋은 성과를 냈던 건 객관식 시험이었는데, 주관식 논술형 시험에서도 잘할 거라 믿다가 모두에게 민폐를 끼쳐버리는 상황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






본인이 좋은 학교를 나왔는데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거나 주변에서 답답해하는 느낌을 받아봤다면 일부러라도 모든 일에 '왜(Why)'를 먼저 묻는 습관을 들여 보라.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얻고 일에 뛰어든다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잘하는 사람일 테니 센스라는 것도 판례처럼 공부로 커버해 보자.


지금까지 내 얘기를 남얘기처럼 하느라 몹시 힘들었다. 내가 널드(Nerd)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우리 엄마, 와이프, 그리고 극소수의 지인들뿐이다. 이제 여러분들도 알게 됐으니 비밀을 꼭 지켜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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