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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함 끝의 안온함에서 비롯한 치열함 끝의 안온함...

나만의 도르마무

by 담담댄스

날이 더우니 의욕이 떨어진다. 때때로 스릴 넘치는 일들이 나를 따끔히 혼내주지만 그때뿐이다. 늘 도루마무인 다이어트의 여파일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온전히 쥐고 가는 느낌이라기보다 하루에 끌려가는 느낌이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삶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럴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보는 영상이 있다.




우선, <Amazing Kiss>는 보아의 노래 중에 <Only One>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굳이 꼽자면 나는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일어는 왠지 모르게 어색해, 영어 버전 위주로 들었지만 이 멜로디와 가사의 아름다움은 굳이 언어를 가릴 필요가 없다. 천재가 나타났다며 "난 내 세상 있죠, Peace B is my network ID"를 부를 때도 별감흥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보아라는 아티스트를 인식하고, 좋아하게 만든 노래다.


H.O.T.와 S.E.S., 신화, Fly to the Sky의 연이은 성공으로 대중들의 기대가 사뭇 높아진 SM, 이수만의 역작이라는 소문에 비해, 그녀의 국내 데뷔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과 일본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SM은 어린 보아의 데뷔 성과를 유념할 새도 없이 일본무대에 데뷔시켰다. 당시 우리보다 훨씬 큰 시장이었던 일본에서 성공한다면 한국에서도 다른 반응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정작 가장 중요한 일본 데뷔 쇼케이스 무대에서 음이탈 해프닝을 겪으며 무대 공포증마저 생겨버렸다. 소속사의 기대와 성공의 부담감을 홀로 짊어진 혈혈단신 중학생 소녀는 나약해질 겨를조차 사치였을까. 주어진 무대가 얼마나 소중했던지, 모든 무대를 마지막인 것처럼 절실히 임한다.


저 무대영상은 그 결과물이다.


단순히 <Amazing Kiss> 노래 한 곡을 들으려 찾아본 유튜브 영상에서 나는 꿈틀대는 생에의 의지를 보았다. 부모님도 없이 어디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도 아니고 일본이라는 객지에 홀로 떨어진 16세의 소녀. 또래들이 보여주는 생기 넘치는 미소가 아닌, 독기 가득한 눈빛을 보고 소름이 돋고야 말았다.


감히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위로조차 건네기 어려울 만큼 총기와 독기 가득한 눈빛. 강렬한 눈빛과 샤우팅으로 클라이맥스를 압도한 소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경쾌한 스텝으로 댄서들과 합을 맞춘다. 그 어느 때보다, 여느 때처럼 신나 보인다.


살아남고야 말겠다


는 독한 의지. 나는 가끔 삶의 무게가 역도선수의 역기처럼 감당하기 버거운 중력으로 짓누를 때마다 16살의 어린 소녀를 떠올린다. 나는 보아가 가수로서 슈퍼스타가 되지 못했더라도 어떤 일을 했어도 성공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나는 삶이 힘들 때마다 '이만하면 됐어, 조금만 쉬어가자'보다는 '어떻게든 버텨보자, 해내고야 만다' 쪽을 선택했다. 어떤 선택이 나에게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남들에게 어떤 입장을 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을 다그치는 것이 선을 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다그치는 데에는 그 어떤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다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잡스러운 생각들로 이따금 한 편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깊이와 여유가 생겼다. 지치고 힘들 때, 나에 대한 안온한 위로보다 치열한 채찍질을 선택한 대가라고 하면 오만일까.


이 정도로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아처럼 재능이 충만한 사람이 노력까지 한다면 어디서든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재능이 없는 사람도 치열하게 살아낸다면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치열함의 결말이 치열함이라는 도르마무식 무한루프라면 나조차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안온함은 반드시 오는 법이다.


요즘 들어 이 영상을 유난히 자주 돌려보고 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라는 핑계로. 내가 받는 위로는 이런 식이다. 그렇게 다정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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