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박지윤이 가장 완벽한 여자가 아닌가 생각했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노래를 정말 잘한다고 여겼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같은 반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반기, 반론, 반박, 하여간 반대였다. 고음이 안 올라가서 가성을 쓴다느니, 라이브하는 걸 한 번도 못 들어봤다느니, 갈수록 노래실력이 떨어진다느니, 안 그런 척하더니 결국 섹시 콘셉트로 가더라니…
워낙 말싸움을 싫어한 나는 그 뒤로 남몰래 듣고 말아버렸다. (사실은 지들이 좋아하는 오빠랑 말도 안 되는 루머? 스캔들? 그것 때문인 줄 내가 모를까 봐서?) 이 모든 억까를 딛고 그녀는 JYP의 품을 떠나 「꽃, 다시 첫 번째」라는 7집을 발매했고, 어쿠스틱으로 콘셉트를 바꾼 이 앨범은 내 마음속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반으로 꼽을 수 있다.
오늘은 근데 이 앨범에 없는 노래를 들어보려 한다. 본인에게 큰 성공과 콤플렉스를 동시에 안겨준 4집 「성인식」 앨범 수록곡인데, 오히려 요즘 많은 커버가 등장하면서 재조명받는 것 같다.
어떤 스킬이나 음역대, 발성, 소리의 운용, 이런 것들을 가창력이라 한다면 박지윤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근데 이 노래 <환상>은 그 어떤 가수의 커버도 재현할 수 없는 원곡자만의 무드와 정서가 있다. 유독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그 정서는 극대화되고, 추억, 아련, 감성, 시절, 이런 다른 층위의 단어들이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스펙터클을 안겨주는 것만 같다.
이 순간, 노래에 대한 감상은 자리를 잃고 저마다 떠오르는 특별한 장면들이 리플레이된다. 이토록 리스너 나름의 서사를 끌어올리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가창력이라는 것이 대관절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이것은 가창력이고 저것은 가창력이 아닌가.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언컨대 사전적 의미의 가창력이라고 한다면 작년의 이 무대는 분명 그런 차원에서도 한층 진일보한 무대다. 특유의 정서는 더욱 무르익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그대여 돌아올 순 없나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말예요
서로를 가졌단 이유만으로
너무도 행복했던
그대여 지금 행복한가요
그 사람이 그렇게 해주나요
아니면 그대 네게 돌아와요
난 항상 기다려요
그대 떠난 걸 헤어졌다는 걸
혼자라는 걸 난 믿을 수가 없는 걸
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그대 모습만 아직도 떠오르는걸
아직도 그댈 기다린다면
아직도 그대 생각에 운다면
그대는 믿을 수가 없겠지요
날 바보라 하겠죠
그대 떠난 걸 헤어졌다는 걸
혼자라는 걸 난 믿을 수가 없는 걸
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그대 모습만 아직도 떠오르는걸
그대 날 떠나 얼마나 행복해졌나요
내가 없는 삶이 훨씬 더 좋던가요
나는 그대 떠나간 뒤 텅 빈 그 자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질 못해요
그대 떠난 걸 헤어졌다는 걸
혼자라는 걸 난 믿을 수가 없는 걸
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그대 모습만 아직도 떠오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