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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Yes or No

대체로 말입니다

by 담담댄스


선택의 순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오늘의 글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남기는 글이다. 물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면 아래 내용을 전혀 읽을 필요도 없다.(나중에 찾아와서 울고불고하셔도 소용없다) 아주 가볍지만 고민되는 상황에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말할까 말까? 말하지 마세요



행동은 대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은 대상이 있다. (누군가 혼잣말을 예외로 든다면, 혼잣말은 어차피 남이 안들을 거고, 들으라고 하는 혼잣말은 혼잣말이 아니라 답하겠다) 말할까 말까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라면 이미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조언은 마치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이런 고민 끝에 건넨 말로 이불킥을 하거나, 안 하느니만 못했던 상황이 많았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경험상 대체로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우선, 고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필요할 때 적확하게 했어야 하는 말인데, 늦었으니 고민이 깊어졌을 확률이 높다. 이럴 경우 아무리 이치에 맞는 말이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굳이? 지금?


갑분싸를 만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은 듣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일 확률이 높다. 좋은 말을 하는데 고민할 까닭이 없다. 싫은 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 대한 충고/조언/평가/판단의 언어를 자의로 먼저 해본 적은 없다. 물론 아끼는 사람에게는 '아, 저거 하나만 바꾸면 너무 좋아질 텐데' 싶은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 거들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해 줄 필요도 없다.


싫은 소리에도 나름의 자격이 필요하다. 내 기준에서는 잘 봐줘야 스승-제자관계, 2촌 이내의 혈연관계나 혼인관계로 맺어진 사이 정도에 해당하는데, 그마저도 조심스럽다. 스승-제자관계는 제자가 원래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라도 스승에게 배워야 하기 때문이고(체벌 ㄴㄴ염), 나머지는 정말 같이 살면서 자주 보는 사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프? 베프라면 이런 고민 없이 할 말, 못 할 말 가릴 수 있다. 한 마디, 한 마디 고민되는 사이라면 아직 베프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부럽긴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하고픈 말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들.


번외편, 고백할까 말까

이건 해야 한다. 금지된 사랑(통념상,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 말고는, 좋아한다는 말은 안 하면 바보 같다 ㅠ 누군가 쉬운 고백이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나는 쉬운 고백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답하며 피해 가겠다. 성시경이 그랬다, 고백은 (참다참다) 터져 나오듯 하게 되는 거라고.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때, 고백하시라. 그러면 그 고민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



살까 말까? 사세요

(물건에 한함, 부동산이나 주식, 코인처럼 투자상품은 해당 없음)


최근에 받은 질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이 있다.


최근 산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너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았던 것을 생각하면서도 참 좋았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소비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근 산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어느 브랜드의 반팔 라운드 티셔츠다.


대학생 때, 백화점에서 이리저리 옷 구경을 하다 너무 예쁜 바람막이를 발견했다. 당장 돈은 있었지만, 뭔가 충동소비를 하는 것만 같아 '다음 주까지 저 바람막이가 사고 싶으면, 그때는 꼭 사야겠다' 마음먹고 사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 그 상품은 없.었.다. 그렇다. 무슨 법칙처럼 나중에는 꼭 없다. 분명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도 너무 사고 싶었는데 왜 주저했는지 모르겠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쉽다. 아마 그때 샀다면 지금까지(?) 잘 입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사기 전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자기기만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ㅋㅋ) 생각보다 유용했다.


① 그것을 사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가? No

② (물건을 처음 본 곳이 오프라인이라면 보자마자 사지 말고)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도 그 상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가? Yes


이 과정을 통과한 후에라야, 산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첨언하자면, 보통 한 바퀴 돌면 더 예쁜 것이 눈에 들어오거나,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냉정한 판단이 들 때가 있다. 대체로 지금까지 이 과정을 거쳐 산 것 중에 크게 후회한 것은 없다. 작은 소비가 주는 확실한 행복, 놓치지 않을 거예요.



갈까 말까? 가세요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다. 편한 0%를 택하느냐, 불편한 0.1% 아니, 0.0001%를 택하느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한 법칙이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대부분의 이벤트는 우리의 움직임을 전제로 한다. 움직임의 범위가 커질수록 시간이 늘어나고, 동선이 많아지며, 이에 따라 마주치는 사람이나 장소 역시 잦아지기 마련이다. 사건(이벤트)의 발생 가능성은 움직임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5년 전의 일이다. 일요일 오후 소개팅이 한 건 잡혀 있었다. 회사에서 빡센 한 주를 보내고, 이어지는 토요일엔 과음으로 이어진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숙취 때문에 일요일에 도저히 누군가를 만날 상황이 아니었다. 소개팅을 아무리 해도 인연은 안 나타나고, 다음 날 출근도 해야 하는데 소개팅 장소는 집에서 무려 20km 떨어진 곳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이번 소개팅은 하면 안 된다고 누군가 계시하는 것만 같았다.


상대방의 일정을 확인해 보니, 토요일에 강원도 여행을 갔다가 일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일정이라고 했다. 상대방 역시 피곤한 상태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럼 다음에 보죠


라고 카톡 대화창에 적었다. 하지만 선뜻 전송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여기서 이 메시지를 보내면 느낌상 다음 만남은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예정한 날 보기로 했고 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토할 것 같았지만 투혼으로 소개팅 현장에 나갔다. 당시 소개팅 상대는 지금의 와이프다.


이 케이스 하나만으로 무조건 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에게 도움이 되거나 즐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작게나마 존재한다면, 대체로 나는 언제라도 움직이는 편을 택할 것이다. 물론 가능성만큼의 리스크 역시 생겨날 것이다. 그래봤자 내가 잃는 건 잠깐의 시간과 적은 돈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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