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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김은숙표 서사의 완성*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를 보고

by 담담댄스
최근 김은숙 작가의 신작 「다 이루어질 지니」를 보았습니다. 그 작품을 보고 나니, 전작이었던(정확한 제작 순서는 모르겠습니다만) 「더 글로리」, 이 작품이 얼마나 걸작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 글은 「더 글로리」 파트 2 방영 직후에 감상을 써둔 글이며,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글을 지금 꺼내두는 이유는 다음에 게재할 「다 이루어질 지니」의 아쉬운 점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은 제가 작품을 볼 때 중요하기 여기는 요소들을 잘 풀어놓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왜 이 시점에 「더 글로리」야?' 생뚱맞다 싶거나 이 작품을 보려고 하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주말새 잠을 쫓아가며, 좀 더 정확히는 잠이 달아날 정도로 흡인력 있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파트 2에 대해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드라마 이후에 많은 드라마를 보았지만, 밤을 새우게 만드는 드라마는 단 한 편도 없었다)


기나긴 서사를 따라가며 감상평을 남기기엔 감당이 어려울 만큼 글이 길어질 듯하여 몇 가지 키워드 위주로 작성해 보고자 한다.



#떡밥회수


우리가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인간과 신, 종교에 대한 다층적 메시지를 전했던 「밀양」 같은 작품에 예술성이라는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실현 불가능한 세계를 설정했지만 촘촘하게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해시키면서 결국 작품 내에서의 개연성을 잃지 않았을 때(핍진성), 쉽게 말해 작품의 세계관으로 작품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 때 기발함완성도를 모두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마블 유니버스라든지, 드라마 「시그널」같이)


최근에 잘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은 작은 사건들이 긴밀하게 얽혀있고, 그 연결고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근본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기다리고 있어서 퀘스트처럼 끝판왕을 깨부숴야 모든 것이 끝나는 스타일의 작품이 인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갈등의 본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개연성이 떨어질 경우, 많은 작품이 초반의 호평 대비 아쉬운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더 글로리」는 이런 측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설명할 수 있다. 파트 1과 파트 2를 나눠서 공개한 이유가 그저 마케팅적인 관점에서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노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즌 1부터 천천히 뿌린 복수의 씨앗은 시즌 2에 이르러 열매를, 아니 풍작을 거둔다. 어떠한 찜찜함, 찝찝함도 없이 모든 떡밥을 완벽하게 회수하고, 서사의 개연성에 모자람이 없다. 추리소설을 읽듯, 작가가 남긴 복선을 되짚어가면서 '아, 이런 장면은 이런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를테면 이름에 ㅇ이 들어가는 사람을 피하라고 했던 연진이(임지연 扮) 엄마의 본명이 '홍영애'(손지나 扮)였다는 사실*은 파트 2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문동은(송혜교 扮)이나 윤소희(이소이 扮)보다 더욱 많은 'ㅇ'이 들어간 사람은 누구도 아닌, 그 얘기를 꺼낸 엄마였던 것이고,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본투비 악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연진을 끝끝내 무너뜨렸던 건 결국 엄마의 배신이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은 민호타우르스님의 해석을 참조했습니다.


하도영(정성일 扮)을 나이스한 개새끼로 묘사한 이유도, 끝끝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어려운 선택을 (두 번*이나) 한 '나이스 가이'면서도 자신에게 가장 도전적이고 무례했으며 거슬리게 했던 전재준(박성훈 扮)을 기어코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은 '개새끼'라는 점에서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한다.

* 한 번은 연진에 대한 사랑 내지는 연민으로 마지막까지 그녀 곁에 남기로 했단 점이고, 나머지는 예솔이 자신의 딸이 아닌 것을 알았음에도 예솔의 아픔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듬어주었다는 점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저 주여정(이도현 扮)의 캐릭터 형성에만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생각했던 강영천(이무생 扮)에 대한 복수 서사까지 완벽히 갖추면서 끝냈다는 점이다. 16회를 보면서 '아 이제 어느 정도 끝났구나' 하고 타임라인을 체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무려 30분이나 남은 러닝타임을 보면서, 도대체 뭐가 남았을까 싶었다. 그 30분을 강영천에 대한 복수까지 기획하고 심지어 작가의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던 러브라인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러브라인이 쏙 빠져있길래 웬일이지? 싶었다) 100% 완벽하고, 꽉 닫힌 해피엔딩이다.


이 밖에도 포스터에 언급된 박연진의 영혼, 이사라(김히어라 扮)의 , 최혜정(차주영 扮)의 , 전재준의 , 손명오(김건우 扮)의 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복수서사를 완성했다는 점 역시 김은숙 작가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그 어떤 의문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사이다' 결말이었고, 이 점이 특히 좋았다.




#메시지


「더 글로리」의 감흥을 식히지 않으려, 많은 감상후기와 해석 콘텐츠를 찾아보며 2차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요즘이다. 많은 해석 중에 이런 해석이 있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복수 서사가 과연 옳은 것인가
지극히 사적인 구원과 그 방식의 폭력성은 정당한 것인가
문동은 역시 악행을 벌인 악인이 아닌가


이 방식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자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 역시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확실히 No라고 얘기할 수 있다.


더 글로리 메인 포스터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추락할 너를 위해, 타락할 나를 위해



너를 추락시키기 위해 얼마든지 타락할 각오가 돼 있다는 점에서 이미 문동은은 극의 시작부터 시청자들로 하여금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물론 타락에 대한 반성으로 문동은이 선택한 방식(스스로 생을 내려놓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면 메시지에 더욱 힘이 실렸을지도 모른다. 악을 응징하고자 악을 선택한 스스로를 단죄하면서, 또 다른 복수의 대상으로서의 자신을 세상에 남겨두지 않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복수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이 콘텐츠는 복수라는 지극히 감성적, 감정적인 결의 콘텐츠다. 때문에 결말의 방향성을 논리적으로 완벽한 서사구조보다 지켜보는 이들의 심리적 안도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었다. 이야말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이다.


김은숙 작가의 치밀하고 영리한 선택을 반영하는 인물이 바로 윤소희 사건을 수사해 오던 형사다. 이 형사는 문동은에 대한 신의 관점이자, 시청자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다. 형사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나도 너의 불행과 억울함을 안다고,
그렇지만 네가 선택한 방법까지 맞는지 모르겠다고



형사는 결국, 암묵적 동조를 통해 그녀를 지지하고 본인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그녀의 아픔을 외면했다는)에 용서를 구한다. 신이 있다면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형사라는 등장인물은 결국 결말에 대해 독자에게 양해를 대신 구하는 작가 본인의 페르소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성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흥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반 발자국 앞서는 것'이다. 메시지의 심오함이나 의미에 빠져 이질적인 소재를 택하거나, 맥락을 무시한 짜임새를 보여준다면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뻔한 이야기는 굳이 찾아서 볼 이유가 없다.


김은숙 작가가 유일하게 흥행을 거두지 못했던 「더 킹: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는 역설적으로 대중성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작가가 「더 글로리」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던 '언제적 김은숙이야'라는 일갈은 딸의 이름을 빌어 스스로에게 남긴 자조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까지도 애틋한 로맨스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람이다. 「더 킹」은 이러한 자신감이 반영된 작품이었을 것이다. ‘평행세계’ 역시, 그녀의 로맨스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킹」은 평행세계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 극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야 했고, 세계관 역시 촘촘하지 못해 논리적 오류, 소위 옥에 티를 양산해 냈다. 맥을 끊는 과도한 PPL로 대중의 관심은 전작에 비해 짜게 식어갔다. 「더 킹」은 김은숙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하지 못한 작품으로 남았다.


「더 글로리」는 전작 「더 킹」에 대한 복수극이라고 해석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그녀는 다시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접점을 영리하게 되찾아냈다. 상황설정은 지극히 심플하게 선 vs. 악이라는 대립구도로 삼았고, 서사에 힘을 부여하는 소재를 '복수'로 잡았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결말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수많은 떡밥을 남기고 이를 촘촘하게 연결했으며, 똑똑하게 회수했다.


모든 성공하는 작품은 서사구조가 복잡할수록 캐릭터는 단순하며, 캐릭터가 복잡할수록 서사는 단순하다. 전자의 방식은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가 잘 보여주고 있고, 후자의 방식은 권도은 작가의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통해 확인했다. 김은숙 작가는 이 중간 어느 지점에서의 균형을 「더 글로리」를 통해 다시 잡았다. 서사도 캐릭터도 적당히 단순하며, 적당히 복잡하다. 쉽게 말해 막장드라마의 팬도, 담백한 드라마의 팬도 모두가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더 이상 쓰기는 어렵다. 혹시 누군가


어? 너 이 장면 기억나? 이거 무슨 의미일까?



라고 묻는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 「더 글로리」에 대한 감상평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 이루어질 지니」에 대한 감상은 이 작품평을 기준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기대해 주시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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