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이전의 대중가요, 김형석의 노래들
이 사람을 혹시 어떻게 알고 있는지. KFC 할아버지? 김일성? ㅋㅋㅋㅋㅋㅋ
놀랍게도 이 사람은 정말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작곡가 김형석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 가수가 우리말(+영어)로 부른 노래가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K-POP이라는 장르는, 비록 신보 줄세우기를 한 테일러 스위프트에 밀렸지만, 지난주까지 빌보드차트 1위였다. 21세기 접어들어 대중음악의 주류가 아이돌로 향하면서, 많은 글로벌 팬들에게 우리의 대중가요가 널리 사랑받았고, 어느새 대중가요는 K-POP으로 인식되었다.
오늘은 K-POP 이전의 '대중가요'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사랑받았던 뮤지션과 명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라 일컫는 1990년대엔 김현철, 윤상, 윤종신, 김광진, 이적, 김동률, 이승환 등 싱어송라이터뿐만 아니라 윤일상, 주영훈, 김창환, 안정훈, 이경섭, 최준영 등 작곡과 프로듀싱을 전문으로 하는 뮤지션들도 각자의 스타일대로 한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중 이 때도, 지금도 내가 원픽으로 꼽는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는 단연 김형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착 감긴다는 표현 말고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김형석이 작곡한 노래들은 지극히 대중적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은 상반되는 가치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무조건 대중성을 꼽겠다. 내가 만든 작품이 후대가 아닌 당대에 사랑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당장의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아티스트나 셀럽과의 협업 기회 역시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으니 커리어 상의 성취감 역시 대단할 것이다.
90년대 이전에는 트로트가 대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멜로디였다. 8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이문세-이영훈 콤비가 만들어 낸 '발라드'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장르, 그리고 음악적 성취는 90년대를 이내 발라드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김형석은 지극히 탁월했다. 김형석의 노래는 특정 뮤즈나 페르소나를 떠오르게 만들지 않는다. (이영훈 - 이문세, 하광훈/지근식 - 변진섭, 윤일상 - 쿨, 주영훈 - 엄정화, 김창환 - 김건모처럼 말이다) 그리고 김형석 본인조차 떠오르지 않게 만든다. 특히 그가 만들어 낸 댄스곡들을 들으면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특징 없음이 특징인 김형석의 곡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작업한 모든 가수의 대표곡으로 대중에게 남을 수 있었다. 어쩌면 코드 진행 등의 음악적 전문지식이 없어 특징을 잡아낼 수 없는 내 한계일지도.
김형석의 웬만한 노래는 모두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노래가 김형석의 작품이었어?
싶은, 예상하기 어려우면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노래들 몇 곡을 소개하고 싶다. 오늘 남긴 글의 최다 방문자는 아마도 내가 되지 않을까. 이 페이지가 일종의 플레이리스트가 될 테니 말이다.
사실 오늘 글은 이 노래를 위한 포스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형석이 만든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노랫말은 얼마 전 글로도 남긴, 양재선, 강은경과 함께 이 시기 저작권을 싹 쓸어간 박주연이 붙였다.
이 노래는 성시경의 리메이크 앨범에 수록돼 원 가창자를 모르는 분도 많다. 성시경 역시 훌륭하게 불렀지만, 좀 더 담담하게 부른 김혜림의 목소리로 들을 때 좀 더 좋다. 아, 정말 좋다.
김형석이 만든 나윤권 노래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아마 <나였으면>이 아닐까. 애절함으로는 <나였으면>이 첫손가락에 꼽히지만, 로맨틱함으로는 단연 이 노래를 꼽을 수 있다. 나윤권의 미성으로 설렘과 체념의 어느 중간쯤 놓여있는 정서, 말 그대로 기대를 잘 표현한 노래다.
사실 2집 수록곡인 <바람이 하는 말>이라는 노래 역시 알려지지 않은, 무척 좋아하는 노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좀 더 반가워할만한 노래를 선택해 봤다.
이 노래는 알아도,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배우 강성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을까.(어쩌면 요즘 친구들은 배우 강성연이 누군지조차 모를 거다) 정말 유명한 노래지만 도저히 넣지 않을 수 없는 김형석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이 노래의 작사가는 앞서 언급한 양재선이다. 당대 최고의 작사가와 작곡가가 만난 노래, 무려 24년이 지난 노래지만 지금 들어도 정말 좋다.
원곡을 조트리오(조규천, 조규만, 조규찬)로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노래는 김광석의 대표곡 중 가장 로맨틱한 노래로 손꼽힌다. 그리고 김형석의 데뷔곡(1991)이다. 대학교 선배 유재하를 동경했던 신인 작곡가가 대가수 김광석의 앨범에 본인의 곡을 실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지 가히 짐작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형석이 직접 멤버로 참여했던,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시부야케이, 라운지 일렉트로닉 계열(추억 돋죠?)의 포터블 그루브 나인의 <Amelie>를 추천하며 오늘 글을 마무리해 본다. 동명의 프랑스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무려 원태연 시인이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노래를 들으면 아멜리에 역을 맡은 오드리 도투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