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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한 언어로 그리는 그림*

작사가 박주연의 노래들

by 담담댄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앞 두 줄 정도면 상황 설명이 끝나요.
가장 촌스러워지는 때가 이 상황을 말로 또는 글로 설명하는 순간이거든요.
- 작사가 김이나 인터뷰 中



어렸을 땐 멜로디가 들리고, 나이가 들면 가사가 들린다고 했던가. 나는 현시대에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노랫말'이라고 생각한다. 말과 글을 음률에 붙였기에 그 음악은 어떤 음악보다 '대중적'이 됐고, 결국 장르명에 '대중'을 붙일 수 있도록 허락받지 않았을까. 말로 실어 나르는 음률의 파급력, 아니 파괴력은 실로 놀랍다. 전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 역시, 밥 딜런에게 그 문을 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대중음악의 중흥기,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을 꼽자면 단연 1990년~2000년대를 들 수밖에 없다. 수많은 밀리언셀러 앨범들이 나온 시기이자,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나름의 팬덤을 형성하며 대중음악 시장의 판을 키워갈 수 있었던 기반이 마련된 시기. 대중음악이 정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시간의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었던, 작사가 박주연을 빼놓고 이때를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박주연의 노래들을 언젠가부터 꼭 써봐야지 벼르고 있었으나 특별한 계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단, 시나브로 우리에게 유명한 노래들과 그렇지 않은 노래들을 결정하는 기준 자체가 '곡' 중심으로 치우쳐 있다. 박주연 노랫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지만, 곡이 노랫말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거나 리드해주지 않으면 감흥이 반감된다. 히트곡만 고르자니 그건 또 내 취향이 아니다. 이 글은 마음과 달리 꽤 난이도가 높은 작업에 속해버렸다.


이윽고 특별한 계기가 마련됐다. 바로 이 노래 덕분이다.






잠시라도 우리 (작곡 나얼 / 노래 성시경, 나얼)



가까스레 잠이 들다 애쓰던 잠은 떠났고
아직 타는 별 과거의 빛은 흐르고

몇 번의 사막을 거쳐 몇 번의 우기를 거쳐
고요를 거쳐 이제야 추억이 된 기억들

떠나간 모든 것은 시간따라 갔을 뿐
우릴 울리려 떠나간건 아냐 너도 같을거야

십년쯤 흘러가면 우린 어떻게 될까
만나지긴 할까 어떻게 서로를 기억해줄까

그걸로 충분해 서로 다른 그곳에서
잠시라도 우리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그녀의 가사는 탁월하다. 몇 번의 사막과 우기는 그 자체로 계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잊었던 메말랐던 시간(사막)과 그리움에 눈물겹던 시간(우기)이 있어야만 비로소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었다는 뜻 아닐까.


차원의 벽을 건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시간대와 다른 공간대를 점유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특별한 인연을 가진 이들을 떠올릴 때면 다른 공간에서도 교감의 순간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같은 순간, 서로를 떠올릴 수만 있다면 그처럼 충분하고 따뜻한 시간이 어디 있으랴.


이런 생각들이야말로 마치 이별을 드라이에이징하듯, 깊이 있게 숙성시켜 발현해 낼 수 있는 성시경과 나얼이라는 훌륭한 보컬리스트를 만나 듣는 이의 감정에 깊은 파고와 다채로운 파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1989년 작사가로 데뷔해 2023년에도 통하는 가사를 쓸 수 있는 그녀의 명료한 촉과 감에 감탄을 금할 길 없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작곡/노래 조용필)



나는 떠날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자리 편히 쉴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작사가의 이름을 가리고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노래가 가창자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는 작사가가 좋은 작사가 아닐까. 이전에 소개했던 김이나 역시, 조용필, 이선희 같은 대가의 노랫말을 쓰면서 가수가 했을 법한 생각들을 메소드 연기자처럼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생각했다.



김이나의 대선배인 박주연 역시 그렇다. 이 노래는 박주연 본인이 뽑은 가장 아끼는 노래이기도 하단다. 조용필의 연락을 받고, 조용필이 되어 써본 가사. 사실 박주연이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당시 발라드 보컬리스트가 남성 위주로 치우쳐 있다손 치더라도, 유난히 남자 가수의 곡이 많고 이 노랫말들이 극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확실히 연배가 있는 남성의 언어다. 모호한 대명사로 뭉뚱그린 말 안에 갖가지 해석이 가능한 언어. 쉬고 싶어도 쉬고 싶다, 놓고 싶어도 놓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네 선배, 아버지의 언어.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고된 세상살이를 겪고 그 모든 것을 초연히 바라볼 수 있는 연륜을 가진 사람의 언어. 조용필의 언어로 조용필이 부르는 노래가 주는 감동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하는 나와 내 또래들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주는 목소리와 노랫말이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작곡/노래 하림)



언젠가 마주칠거란 생각은 했어
한눈에 그냥 알아 보았어
변한것 같아도 변한게 없는 너

가끔 서운하니 예전 그 마음 사라졌단게
예전 뜨겁던 약속 버린게 무색해진대도 자연스런 일이야
그만 미안해 하자

다 지난 일인데 누가 누굴 아프게 했건
가끔 속절없이 날 울린 그 노래로 남은 너
잠신 걸 믿었어 잠 못 이뤄 뒤척일때도
어느덧 내 손을 잡아준 좋은사람 생기더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이대로 우리는 좋아보여 후회는 없는걸
그 웃음을 믿어봐
믿으며 흘러가


이 노래는 제목 한 줄로 끝났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나는 맞춤법에 대단한 강박을 갖고 있지만, 나름의 사연 있는 시적 허용에 관대한 사람이다. 노래 제목이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히네' 였다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결코 어려웠을 것이다. 잊히고, 잊혀서, 잊혀져야 비로소 잊은 것 같다.


박주연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유의어를 줄줄 쏟아내는 모습을 본 적있다. "문득"을 꺼내자, "갑자기, 불현듯, 느닷없이, 어쩌다......" 정말 느닷없이 시작된 비슷한말 잇기는 박주연이 왜 프로이며, 정상에 있는 작사가인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가창자와 곡의 분위기, 발음, 멜로디에 어울리는 음절 수까지 고려해 대안을 갖고 있는 그녀의 단어 주머니는 글쓰는 사람으로서 무척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속절없이'라는 말에 꽂혔다. 떠나간 사랑이 떠오르는 순간은 실로 속절없다. 이후로는 속절없음의 연속이다. 속절없이 떠올랐다 속절없이 그립다가 속절없이 눈물이 난다. 그 또는 그녀와 같이 들었던 음악을 들을 때 더욱 그렇다. 헤어진 이가 노래로 남는다는 말 앞에 자리한 속절없이 라는 표현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노래.


무엇보다 이 노래, 그리고 노랫말의 가치는 이별에 몸서리치던 청춘들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함께 진리처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격언을 남겼다는 데 있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을 위로해 주었는지, 미처 헤아릴 수 없다.



가려진 시간 사이로 (작곡/노래 윤상)



노는 아이들 소리 저녁 무렵의 교정은
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메아리로 멀리 퍼져가는 꼬마들의 숨바꼭질 놀이에
내 어린 그 시절 커다란 두눈의 그 소녀 떠올라

넌 지금 어디있니 내 생각 가끔 나는지
처음으로 느꼈엇던 수줍던 설레임 지금까지

나 해매는 까닭엔 네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 숨겨졌지 가려진 시간 사이로


작사가야말로 시인 다음가는 시인이 아닐까. 시인이 작사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굳이 순서를 따질 필요도 없다. 서두에 밝혔던 김이나의 표현대로 앞 두 줄만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주는 심상의 대가가 박주연이다.


첫사랑의 심상을 저토록 아련히, 선연히 그려낼 수 있을까. 시간은 지나간 것이 아니고, 가려진 것일 뿐. 언제든 들춰보면 떠오른다는 공감각적 표현들. 윤상과 박주연의 콜라보레이션 하면 <이별의 그늘>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나는 가사의 아름다움이라는 전제 하에 이 노래를 먼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박주연은 아직도 노트에 직접 필기를 하는 식으로 가사를 쓴다고 했다. 타이핑을 할 때면,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을 백스페이스로 지우게 되는데 이 때문에 생각의 흐름을 놓치거나 다음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왜 그런 흐름으로 가사를 그려나갔는지 반추할 수 있기에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는 그녀의 변(辯)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가 노트에 썼다 지운 수많은 흔적들, 그렇게 선별한 언어들 덕분에 나는 글을 쓰고 노래를 듣는 즐거움을 더욱 알아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은 大작사가 박주연에게 쓰는 감사의 팬레터로 하면 참 좋겠다.



*표지 이미지 출처_<'90년대 발라드 작사의 신화' - 작사가 박주연> (유튜브 ARCHIVE-K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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