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대웅 작가님의 「연구소의 승리」(2025, 계단)를 읽고
담담댄스 선정, 브런치 최고의 문장가이자 사유인. 그리고 왠지 취미가 공부일 것만 같은 나의 원픽. 배대웅 작가님의 신간 「연구소의 승리」가 나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 간다. 도파민에 찌든 삶이라 이토록 귀한 양서를 이제야 완독하고 글을 남기는 본인을 엄히 꾸짖어 본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배대웅 작가님에게 질문이 있다.
배대웅 작가님, 좋은 얘기 먼저 들으실래요? 나쁜 얘기 먼저 들으실래요?
그럼 작가님은 5시그마(σ) 수준의 확률로
나쁜 얘기요
라고 하실 것만 같다. 그래서 배대웅 작가님의 신작 「연구소의 승리」에 대해 나쁜 얘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이제 좋은 얘기를 해보겠다.
나는 항상 배 작가님을 다정한 사람이라 일컫는다. 내가 다정하다는 말을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다정한 사람은 정확한 사람. 그래서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오해나 곡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리켜서 가르쳐 주는 사람. 그래서 어쩌면 그럴 의도가 없었기에, '다정한'이라는 수식어를 배 작가님이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함에는 필연적으로 부지런함이 수반돼야 한다. 당신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집착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는 부지런하지 않다면 결코 실현시킬 수 없다. 남을 위해서 일종의 '사서고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다정하다는 말 이외에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으려나.
나는 과학의 대중화를 막는 요소가 있다면 불친절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모국어를 쓰며 모여사는 사람들. 입국 심사도 까다롭고, 딱히 출국 의지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마 문과 출신의 배대웅 작가님도 연구원에 처음 출근할 때 어떤 특별한 비자를 가지고서야 들어갈 수 있지 않았으려나.
요즘이야 수많은 과학자 또는 과학계 종사자들이 순수한 선의로, 또는 입신양명의 목적을 가지고 대중의 언어로 미디어를 통해 과학을 소개하고 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배대웅 작가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을 단순히 쉽게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정확한 언어로 어려운 개념 그 자체를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이다. 그 결과물이 이토록 다정한 첫 번째 과학 이야기, 「최소한의 과학 공부」(2024, 웨일북)였다.
이윽고 브런치에서 엿보았던 야심작, 「연구소의 승리」가 세상에 나왔다. 총평을 해보자면 이 책은 연구소의 역사와 성과를 나열하는 해설서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가 떠올랐다. 연구소와 과학, 과학자를 둘러싼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이 촘촘히 얽혀 들어 챕터마다 잘 짜인 한 편의 이야기로 닿았다.
세헤라자데는 목숨이 걸려있기에 그렇게 재밌게 이야기했겠지만, 작가 배대웅은 무엇이 걸려있기에 이토록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지. 그가 소개하는 연구소 이야기는 과연...?? 여러분 모두 직접 사서 읽어보길 바란다. 이 재미진 이야기를 공짜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초판을 선물 받았지만, 한 권 구매해 꼭 읽어보고픈 분이 있다면 선물로 드리고자 한다. 댓글 남겨주세요 :)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섭섭하지 않을까. 「연구소의 승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소개하고, 몇몇 문장들을 발췌해 배대웅 작가님의 문장이 얼마나 멋들어진지 보여주는 것까지가 글벗으로서의 우애이자 오마주라고 지레짐작해 본다.
「연구소의 승리」에 등장하는 많은 연구소와 과학자 중 나를 사로잡은 것은 덴마크 태생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다. 코펜하겐 정신을 설명하는 한 단락이 딱 내 취향이랄까.
학술 토론도 지적 유희의 축제에 가까웠다. 토론하는 자리에는 장난감 나팔, 대포, 북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참가자들이 발표에 감탄하면 나팔을 불었고, 반대할 때는 장난감 대포를 쏘았다. "이론에 구멍을 뚫는다."라는 의미의 익살이었다. 발표가 끝나면 북을 쳐서 박수를 대신하기도 했다.
「연구소의 승리」 P. 253 中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은 '후배들이 언제든지 선을 넘을 수 있을 만큼 스스럼없이 무슨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자질이다. 선배 입장에서는 가끔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땐 담백하게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마음이 아파 ㅠ
라고 하면 되겠지. 아니면
작작 좀 하지?! 응?!
정도의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ㅋㅋ 무튼, 후배가 선배에게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어야 시도 때도 없이 아이디어가 나오고, 리더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 집단지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런 리더십에는 후배들로 하여금
저 사람이 없어지면 내가 더 힘들어! 도와줘야겠다
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도록 하는 힘이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은 잘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 같다. 이 닐스 보어라는 사람, 아니 분, 아니 님. 앞서 과학국(國)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비자가 필요해 보인다 일갈하기도 했는데, 닐스 보어라는 사람이 과학국 대통령이라면 언제든 무비자 입국이 가능할 것만 같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철저히 믿고 따르는 명제다. 고도의 집중력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도 있지만, 기발한 생각의 길을 막아서는 벽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땐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하면서 머리를 식히다 보면 벽이 갑자기 허물어질 때가 있다.
자신의 연구성과에 자존심, 정체성을 담아 과학 이론을 설파하는 자리를 떠올려 보자. 얼마나 엄숙하겠나. 그런 자리에서 누군가 면전에 장난감 대포를 쏜다면? "풉~"하며 일순간에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지 않을까. 이는 코펜하겐 정신의 기반이자 코펜하겐 네트워크의 허브(Hub), 닐스 보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내가 닐스 보어에게 감탄을 넘어 경외의 마음이 든 것은 이 문장을 보았을 때다.
보어는 그중에서도 기금 모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과학자는 대중의 관심과 현실의 이해관계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후원 의사가 있는 기업가나 정부 관료에게 '을'이 되어 환심을 사는 일도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어는 이런 일에 기꺼이 나섰고, 재정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함으로써 많은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다.
「연구소의 승리」 P. 255 中
자식들은 먹을 것이 없어 물을 2리터 넣고 라면 하나 끓여서 나눠먹는데, 외국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내가 어떻게 학원 강사를 하냐며 물색없는 소리를 지껄이던 개꼰대 아빠들. 우리 팀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사람 좋은 얼굴로 받아와 놓고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김 대리~ 이렇게 됐네... 이거 내일 오전까지 좀 부탁해" 하고서 정작 성과는 남의 팀에 퍼주기만 했던 답답이 팀장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정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는 명제를 꺼내본다. 닐스 보어는 자유롭고 쿨한 성정을 지녔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리더였다. 문득 친구들 앞에서는 그렇게 입담을 풀면서 정작 평가 시즌, 상사에게 빈말로라도 듣기 좋은 얘기를 하는 다른 사람을 흉보기 바빴던 나 자신이 겹쳐 보여 일순간 민망해졌다.
담담댄스야, 저 대단한 닐스 보어도 그랬어 인마. 니가 뭐라고...
공부만 잘했던, 특히 이과생들을 널드(Nerd)라며 조롱했는데... 이토록 똑똑하고도 현명했던 석학으로부터 이런 통찰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이마저도 배대웅이라는 CERN(정확히는 LHC, 거대 강입자 충돌기)이 없었다면, 우주상에 실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힉스 보손 같은 통찰들을 깨닫지 못했을 거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을까요 작가님?!)
배대웅 작가님은 연구소의 승리를 통해 이런 문장들도 남겼다. 앞뒤 맥락이 없어도 이해 가능한 부분만 발췌했다. 한때 화려한 외피만 남고 의미는 비어 있는 문장에 심취했던 나를 바로잡아주는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한 문장들. 결국 의미를 전달하고, 통찰을 이끌어내는 문장이야말로 진정 멋있는 문장임을 깨닫게 해 준 배대웅 작가님의 선물 같다.
ㅡ 연구소는 '돈을 쓰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 해결 능력' 그 자체다. (P. 14)
ㅡ 과학은 국가화되었다. (P. 23)
ㅡ 정치가 과학을 삼켜버린 카이저빌헬름협회의 두고두고 회자될 오점이었다. (P. 90)
ㅡ 따라서 전쟁과 무기 개발에 과학이 동원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과학은 이 역사적 과정의 피해자이면서 수혜자이기도 했다. 전쟁의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지만, 동시에 과학연구에 큰돈이 몰리고 연 구소 조직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기반도 되었기 때문이다. (P. 109)
ㅡ 요컨대 우주를 향한 도전이라는 과학적 열망보다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의 정치 논리가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 연구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과학이 일으킨 파급효과는 인간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기 때문이다. (P. 123)
ㅡ 이렇듯 '쓸모없는 지식'이야말로 오랜 시간을 지나 가장 근본적인 쓸모를 발휘한다는 믿음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P. 167)
ㅡ 이 원소는 존재 자체로 '일본'이라는 이름을 과학사에 한 페이지에 새겼고, 과학이 한 나라의 문화이자 자존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P. 239)
ㅡ 협력이 곧 실력이고, 네트워크가 곧 실험실이 된 시대가 도래했다. (P. 246)
ㅡ 양자역학의 퀀텀점프는 한순간에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열정과 지적 교류가 임계점에 도달해 터져 나온 도약이었다.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해야 높은 궤도로 도약하듯, 과학의 혁신에도 집단지성이란 에너지가 필요했다. (P. 259)
배대웅 작가님을 설명하는 단어를 찾다 '인과(因果)'라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함부로 주장하지 않고, 원인이 진짜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궁구하는 작가님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이렇게 깊은 사람이 시간과 자비를 들여 글쓰기 세미나도 열고, 음악 에세이를 통해 고급진 취향과 해박함을 드러낼 때면 때로는 질투심도 느꼈다.
이 모든 감정을 뒤로하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재미있는 「연구소의 승리」를 이제야 완독했다는 안타까움이 가장 크다. 이토록 다정한 과학 이야기를 나만 누릴 수는 없다. 과학이 내셔널리즘에서 인터내셔널리즘으로 진화했듯, 이 즐거움이 광자(Photon)처럼 퍼져나가길.